현대문학 2강. 공장과 도시를 쓴 사람들
나라가 가장 빠르게 부유해지던 시기에, 소설은 그 속도에 깔린 사람들을 세느라 바빴습니다.
풀고 시작
1970년 11월, 문학이 따라잡아야 했던 사건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스물두 살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입니다. 이 사건은 사회운동만 흔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소설이 다루던 인물 목록에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문학의 정면으로 걸어 들어왔거든요.
황석영(1943~)의 「객지」(1971)는 그 응답 중 가장 이른 축에 듭니다. 간척지 공사장을 떠도는 일용 노동자들이 임금 문제로 뭉쳤다가 흩어지는 이야기인데, 놀라운 것은 이 소설이 승리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구호를 외치는 대신 밥값과 삽자루와 사람 사이의 불신을 세밀하게 그립니다. 르포가 아니라 소설이어야 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통계는 몇 명이 다쳤는지 알려 주지만, 소설은 그 사람이 그날 무엇을 망설였는지를 알려 주니까요.
삼포는 어디로 갔나
「삼포 가는 길」(1973)은 겨울 길에서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공사판을 떠도는 영달, 오랜만에 고향 삼포로 돌아가는 정 씨, 술집에서 도망친 백화가 눈길을 함께 걷습니다. 셋 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길 끝에서 정 씨는 고향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무슨 소식인지는 읽는 재미를 위해 남겨 두겠습니다.
이 짧은 소설이 반세기 넘게 교과서에 실리는 힘은 산업화 비판이라는 요약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개발이 무언가를 짓는 동시에 무언가를 지운다는 사실을, 돌아갈 곳을 잃은 사람의 걸음걸이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 이문구는 『관촌수필』(1972~1977)에서 사라지는 농촌 공동체를 사투리와 함께 기록했고, 신경림은 시집 『농무』(1973)에서 텅 빈 농촌의 흥과 울분을 함께 담았습니다.
난장이의 집은 낙원구 행복동에 있습니다
조세희(1942~2022)는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열두 편의 짧은 소설을 잇대어 발표하고 1978년 한 권으로 묶습니다. 이것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입니다. 철거 통지서가 날아든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장이 아버지와 삼남매의 이야기죠. 주소는 낙원구 행복동입니다. 이 반어 하나로 작품의 태도가 다 설명됩니다.
형식이 특히 대담합니다. 연작의 화자가 계속 바뀌어서 같은 사건을 아들이 보고, 딸이 보고, 반대편 사람이 봅니다. 문장은 극도로 짧고 감정을 절제합니다.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 씨의 병 같은 수학 이미지가 곳곳에 박혀 안과 밖의 구분이 무너지는 세계를 암시하죠. 이 작품은 이후 300쇄를 넘기며 한국 현대소설의 최장기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비판도 오래 따라다녔습니다. 선악이 너무 선명하다는 지적인데, 바로 그 선명함이 힘이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박완서, 부엌에서 전쟁을 보다
박완서(1931~2011)는 마흔 살에 『나목』(1970)으로 등단합니다. 전업주부로 아이 다섯을 키우다 낸 첫 장편이었죠. 그런데 이 늦은 출발이 오히려 그의 무기가 됩니다. 그는 거대한 역사를 광장이 아니라 부엌과 시장과 응접실에서 봤습니다. 「도둑맞은 가난」(1975)이나 『휘청거리는 오후』(1976)에서 그는 갑자기 중산층이 된 사람들의 허영과 불안을 정확하게 해부합니다.
동시에 그는 평생 한국전쟁으로 돌아갔습니다. 『엄마의 말뚝』 연작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에는 전쟁 중 오빠를 잃은 기억이 되풀이해 나옵니다. 같은 상처를 수십 년에 걸쳐 다시 쓰는 일 자체가 하나의 문학적 방법이었습니다. 남성 작가들이 전쟁을 이념의 문제로 쓸 때, 그는 그 이념이 한 집안의 밥상과 안방을 어떻게 부수는지를 썼습니다.
시대가 청구서를 내밀 때
1970년대와 80년대의 문학은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1970년 김지하의 담시 「오적」이 실린 『사상계』는 그 일로 폐간되었고, 1974년에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결성되어 작가들이 직접 성명을 냈습니다. 1980년 신군부는 정기간행물 등록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지성』을 한꺼번에 없앴습니다. 정기간행물이 막히자 작가들은 부정기 간행물, 곧 무크지로 옮겨 갔습니다. 억압이 형식을 바꾼 것이죠.
노동자가 직접 쓴 글도 등장합니다. 유동우와 석정남이 남긴 수기가 널리 읽혔고, 1984년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시인 박노해가 『노동의 새벽』을 냅니다. 문학이 현실에 복무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 시기에 가장 강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부담이 있었습니다. 문학이 시대의 도구가 되는 순간, 시대가 바뀌면 그 문학은 어디에 서야 할까요. 이 질문이 실제 청구서로 돌아오는 시점이 1990년대이고, 그것이 다음 강의 이야기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시대가 문학에 복무를 요구할 때 작가는 어디까지 응해야 할까요. 응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 훗날 더 오래 읽히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이 평가를 가르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일까요, 아니면 평가하는 시대의 필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