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시가 4강. 적히지 않고 살아남은 문학
한 번도 종이에 적히지 않은 채 수백 년을 건너온 문학이 있습니다. 그 저장 장치는 사람의 몸이었습니다.
풀고 시작
일하려고 부른 노래
민요를 감상용 음악으로 생각하면 절반을 놓칩니다. 민요는 대부분 무언가를 하려고 불렀습니다. 학자들은 흔히 세 갈래로 나눕니다. 모를 심고 논을 매고 베를 짜면서 부른 노동요, 상여를 메고 나가거나 지신을 밟으며 부른 의식요, 놀면서 부른 유희요입니다. 노동요의 가락이 대체로 앞소리와 뒷소리로 갈라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고 여럿이 후렴을 받는 구조라야 손발이 맞고 숨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노래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장치였던 것이죠. 의식요는 더 노골적입니다. 상여소리는 죽은 이를 보내는 절차 자체이고, 지신밟기 노래는 땅의 신을 달래는 주술입니다. 그러니 민요를 볼 때 물어야 할 첫 질문은 무슨 내용인가가 아니라 이 노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가입니다.
지역마다 목소리가 다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나옵니다. 우리 민요는 지역에 따라 음이 움직이는 방식이 다르고, 이 지역별 어법을 토리라고 부릅니다. 경기 지역의 노래는 맑고 경쾌하게 굴러가고,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도 민요는 떠는 음과 꺾는 음이 강해 애절합니다. 「육자배기」의 그 눌린 듯한 슬픔이 여기서 나옵니다. 평안도와 황해도의 서도 민요는 콧소리를 섞어 잘게 떨고, 강원도와 경상도의 동부 지역 민요는 뼈대가 굵고 곧게 뻗습니다. 「정선아리랑」과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을 나란히 들어 보면 같은 이름을 달고도 전혀 다른 노래처럼 들리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는데, 등재된 것은 특정한 한 곡이 아니라 수백 가지 변형을 낳는 이 방식 자체였습니다. 고정된 원본이 없다는 것이 결함이 아니라 특성이었던 셈입니다.
열둘에서 다섯으로
판소리는 소리꾼 한 명과 북 치는 고수 한 명이 몇 시간짜리 이야기를 통째로 끌고 가는 장르입니다. 1843년에 송만재가 지은 「관우희」에는 열두 종목이 열거되어 있어 흔히 열두 마당이라 부르는데, 문헌마다 목록이 조금씩 달라 그 열둘이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소리로 전승되는 것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다섯 마당뿐입니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신재효(1812~1884)가 사설을 여섯 마당으로 정리했지만, 그중 「변강쇠타령」조차 지금은 소리가 끊겼습니다. 사라진 작품들은 대체로 성이나 신분을 노골적으로 다룬 것들이었고, 판소리의 청중이 장터에서 양반가로 넓어지면서 그 취향에 맞지 않는 쪽이 밀려났다는 설명이 유력합니다. 인기를 얻는 대신 폭을 잃은 것이죠.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선정됐지만, 그 목록이 열둘에서 다섯으로 줄어든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청중이 공연자가 되는 순간
판소리가 특별한 이유는 구성 요소에 있습니다. 소리꾼은 노래만 하지 않습니다. 노래로 부르는 창 사이사이에 말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 아니리를 끼워 넣고, 부채를 들어 몸짓으로 상황을 그리는 발림을 씁니다. 아니리 덕분에 긴 이야기가 숨을 쉬고, 소리꾼은 그 사이에 목을 쉬게 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추임새입니다. 고수가 얼씨구, 좋다 하고 넣는 소리를 청중도 함께 넣습니다. 이 순간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흐려집니다. 판소리 판에서 관객은 조용히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입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북 치는 사람의 몫을 소리꾼보다 앞에 두는 이 표현은, 이야기가 혼자가 아니라 주고받는 사이에서 만들어진다는 감각을 담고 있습니다.
무가와 설화, 그리고 오간 것들
구비문학의 세계는 훨씬 넓습니다. 굿판에서 무당이 구연하는 서사무가에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바리공주」는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아이가 병든 부모를 살릴 약을 구하러 저승길을 떠나는 이야기이고, 「제석본풀이」는 당금애기라 불리는 여성의 수난과 출산을 다룹니다. 두 이야기 모두 주인공이 여성이고, 고생 끝에 신의 자리에 오릅니다. 문자로 된 조선 문학이 여성에게 거의 내주지 않은 주인공 자리를 굿판은 내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설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널리 알려진 아기장수 이야기는 결말을 미리 말하자면 비극인데, 비범한 아이가 태어나자 화를 입을까 두려워한 부모가 직접 아이를 없애는 구조입니다. 힘을 가진 자가 위에서 죽인 것이 아니라 가족이 미리 포기했다는 이 설정이 오랫동안 되풀이해 이야기됐습니다. 그리고 이 구비의 세계는 기록문학과 끊임없이 주고받았습니다. 판소리 사설이 굳어져 「춘향전」과 「심청전」 같은 판소리계 소설이 되었고, 설화가 소설의 뼈대가 되었으며, 반대로 소설이 다시 소리꾼의 입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적히지 않은 문학과 적힌 문학은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같은 이야기의 두 상태였습니다. 다음 강부터는 그 적힌 쪽, 고전 산문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아리랑은 고정된 원본이 없어서 오히려 수백 가지로 살아남았습니다. 원본이 정확히 보존되는 오늘의 기록 방식은 이야기를 살리는 쪽일까요, 굳히는 쪽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