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1강. 폐허에서 다시 쓰기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작가들이 먼저 확인한 것은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무너진 문장이었습니다.
풀고 시작
손창섭의 방, 장용학의 우화
1953년 휴전이 되자 작가들 앞에 이상한 문제가 놓입니다. 쓸 것은 넘치는데 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식민지 시기에 배운 문장은 이 폐허를 담기에 너무 단정했거든요. 손창섭(1922~2010)이 「비 오는 날」(1953)에서 고른 답은 인물을 앓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소설에는 다리를 저는 사람,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 남에게 얹혀사는 사람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잉여인간」(1958)이라는 제목은 이 계보를 한 단어로 요약하죠. 이들은 게을러서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무너진 세계가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리는지를 몸으로 증명하는 인물들입니다.
장용학(1921~1999)은 정반대로 갔습니다. 「요한 시집」(1955)은 우리에 갇힌 토끼 이야기로 문을 엽니다. 바깥으로 나가려던 토끼가 어떻게 되는지를 두고 지금도 독법이 갈리는데, 자유가 곧 구원은 아니라는 우화로 읽는 쪽과 이념이 만든 감옥의 알레고리로 읽는 쪽이 대표적입니다. 한자를 빽빽하게 박아 넣은 그의 문장은 당대에도 난해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손창섭이 바닥을 기며 전쟁을 그렸다면 장용학은 관념의 사다리에 올라 전쟁을 내려다본 셈입니다.
4월이 시를 바꾸다
1960년 4월 19일 이후 한국 시는 다른 언어를 얻습니다. 김수영(1921~1968)은 그전까지 도시 소시민의 옹졸함을 자조적으로 쓰던 시인이었는데, 「푸른 하늘을」에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씁니다. 혁명을 찬양하는 시가 아니라 혁명의 대가를 계산하는 시죠. 유고작 「풀」에 이르면 그는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봅니다. 그는 1968년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해에 쓴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는 지금도 시론의 고전으로 읽힙니다.
신동엽(1930~1969)은 같은 4월을 훨씬 먼 과거와 이어 붙였습니다. 「껍데기는 가라」(1967)가 남기려는 알맹이에는 동학과 4·19가 함께 놓입니다. 장편 서사시 「금강」(1967)은 동학농민전쟁을 정면으로 불러냈고요. 김수영이 자기 안의 소시민성과 싸웠다면 신동엽은 역사의 지층을 파고들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이 시기를 더 짧고 뜨겁게 만듭니다.
순수냐 참여냐, 지면에서 벌어진 설전
1967년 이어령이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를 발표하면서 논쟁이 불붙습니다. 그의 진단은 작가들이 실체도 확인하지 않은 공포에 스스로 위축되어 상상력을 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수영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그 공포는 실체 없는 그림자가 아니라 문화 전체를 조이고 있는 실재였고, 문학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가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 다 문학의 자유를 옹호했다는 것입니다. 쟁점은 자유의 적이 작가 바깥에 있느냐 안에 있느냐였습니다. 이 논쟁은 문학이 현실에 복무해야 한다는 참여론과 문학은 그 자체로 자족해야 한다는 순수론의 오랜 대립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이겼다고 정리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설전 이후 한국 문학은 참여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게 되었고, 그 부담이 다음 강의 주제가 됩니다.
광장이 던진 질문
1960년 11월 잡지 『새벽』에 최인훈(1936~2018)의 『광장』이 실립니다. 작가 스스로 4·19가 없었다면 발표하기 어려웠을 작품이라고 밝혔죠. 주인공 이명준은 남쪽에서 밀실만 있고 광장이 없다고 느끼고, 월북한 북쪽에서는 광장이 있으나 그것이 텅 빈 구호임을 봅니다. 그는 결국 어느 쪽도 고르지 않고 중립국행 배에 오릅니다. 여기까지는 널리 알려진 설정이라 말씀드리지만, 배 위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답을 주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분단을 다룬 이전 작품들이 대체로 한쪽의 정당함을 전제했다면, 『광장』은 양쪽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최인훈은 이 작품을 평생에 걸쳐 여러 차례 고쳐 썼습니다. 한자어를 한글로 바꾸고 문장을 다듬는 작업이 수십 년 이어졌으니, 작가에게도 끝나지 않은 질문이었던 셈이죠.
분단문학이라는 이름은 언제 생겼나
재미있게도 분단문학이라는 말은 작품보다 늦게 왔습니다.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1954), 하근찬의 「수난이대」(1957), 이범선의 「오발탄」(1959)은 이 용어가 자리 잡기 훨씬 전에 나왔습니다. 1970년대 이후 비평이 이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 읽기 시작하면서 범주가 만들어졌고, 윤흥길의 「장마」(1973)나 조정래의 『태백산맥』(1986~1989)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여기에 박경리(1926~2008)의 『시장과 전장』(1964)을 나란히 놓으면 그림이 조금 달라집니다. 전쟁을 이념의 충돌이 아니라 한 사람이 견뎌 내야 하는 시간으로 옮겨 놓은 장편이거든요. 이 목록이 오래도록 남성 작가 위주로 짜여 왔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범주에는 값이 따릅니다. 흩어져 있던 작품들이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읽히게 된 것은 분명한 소득입니다. 반면 모든 작품을 분단으로 환원해 읽는 습관도 함께 생겼죠. 게다가 이 문학사에는 오랫동안 절반이 비어 있었습니다.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1988년 해금 전까지 금기였기 때문입니다. 문학사는 쓰인 것만이 아니라 읽는 것이 허락된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광장』은 남과 북 어느 쪽도 고르지 않는 인물을 세워 두었습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까요, 아니면 판단을 미루는 일일까요. 그리고 그 판단을 독자에게 넘기는 소설과 답을 제시하는 소설 중 어느 쪽이 더 오래 읽힌다고 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