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지 / 한국문학 / 고전 산문 2강. 한글로 쓴 첫 베스트셀러들

고전 산문 2강. 한글로 쓴 첫 베스트셀러들

조선의 소설은 서점에서 팔리기 전에 빌려주는 가게와 길거리 낭독가를 통해 먼저 팔렸습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조선 후기 사람들이 국문 소설을 접하던 방식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신문 연재는 근대 활자 매체가 들어온 20세기 초에야 가능해진 방식입니다. 조선 후기의 소설은 빌려주는 세책점,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전기수, 상업적으로 찍어 낸 방각본이라는 세 통로로 퍼졌고, 이 통로들이 곧 독자층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서얼이라는 이름으로

『홍길동전』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을 찌르는 것은 칼이 아니라 호칭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는 그 유명한 대목은, 조선의 서얼 차별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촘촘했는지를 한 문장으로 보여 줍니다. 능력이 있어도 관직의 문턱에서 잘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 소설은 그 사람의 편에 섭니다. 저자는 오래 허균(1569~1618)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근거는 이식이 『택당집』에 남긴 짧은 기록입니다. 다만 요즘 연구자 가운데는 지금 우리가 읽는 국문본이 훨씬 뒤인 조선 후기 방각본 계열이므로 허균의 원작과 그대로 겹쳐 놓기는 어렵다고 보는 쪽도 있습니다. 저자 문제가 흔들린다고 해서 작품의 무게가 줄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손을 거치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억울함을 건드렸는지를 말해 줍니다.

구운몽을 읽는 두 개의 눈

『구운몽』을 이야기하려면 구조를 언급할 수밖에 없으니 미리 알려 드립니다. 이 작품은 꿈의 액자를 쓴 소설입니다. 불도를 닦던 성진이 팔선녀와 마주친 뒤 인간 세상에 태어나 양소유로 살며 부귀와 공명과 사랑을 남김없이 누립니다. 김만중(1637~1692)은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위로하려 이 작품을 지었다고 전합니다. 해석은 크게 둘로 갈립니다. 한쪽은 세속의 영화가 결국 헛되다는 불교의 공(空) 사상을 서사로 옮긴 작품으로 읽습니다. 다른 한쪽은 그 헛됨을 말하기 위해 부귀영화를 그토록 화려하고 길게 그려 냈다는 점에 주목해, 욕망을 실컷 긍정한 소설로 읽습니다. 어느 쪽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두께입니다. 김만중이 『서포만필』에서 우리말로 쓴 글이야말로 참된 글이라며 정철의 가사를 높인 대목도 함께 기억해 둘 만합니다.

판본마다 다른 춘향

춘향전은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백 종이 넘는 이본의 덩어리입니다. 서울에서 찍은 경판본은 짧고 담백하고, 전주에서 찍은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는 길고 풍성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춘향의 신분이 판본마다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어떤 판본에서는 기생의 딸이고, 어떤 판본에서는 양반의 서녀로 격상됩니다. 이 작은 차이가 이야기 전체의 성격을 바꿉니다. 춘향을 양반의 딸로 두면 이 이야기는 신분에 걸맞은 정절을 지킨 열녀의 교훈담이 되고, 기생의 딸로 두면 신분의 벽을 정면으로 밀어붙인 저항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본이 많다는 것은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계속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는 증거입니다.

효녀와 제비 뒤에 있는 것

심청전과 흥부전도 사정은 같습니다. 심청전은 눈먼 아버지를 위해 딸이 몸을 던진다는 효의 서사로 읽히지만, 인신 공희라는 오래된 설화의 층이 그 아래 깔려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딸의 목숨을 값으로 치른다는 설정 자체를 불편하게 읽는 시각도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흥부전은 착한 아우와 못된 형의 권선징악처럼 보이지만, 조선 후기의 농촌을 떠올리면 다른 그림이 겹칩니다. 땅을 늘려 가는 부농과 밀려나는 몰락 양반, 품을 팔아야 사는 빈농이 한 형제의 얼굴로 갈라져 있는 것이죠. 판본에 따라 흥부의 가난이 웃음거리로 그려지기도 하고 처참하게 그려지기도 하는데, 그 진폭 자체가 당시 사람들이 가난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빌려주는 가게와 길거리 낭독가

이 소설들은 어떻게 그렇게 널리 퍼졌을까요. 첫째는 세책점입니다. 필사본 소설을 돈 받고 빌려주는 가게가 서울에 있었고, 부녀자들이 비녀와 팔찌를 팔아 가며 빌려 본다는 사대부의 개탄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둘째는 방각본입니다. 목판으로 찍어 파는 상업 출판물이 경판과 완판을 중심으로 유통되면서 소설이 상품이 됐습니다. 셋째가 전기수입니다. 사람 많은 거리에서 소설을 소리 내어 읽어 주던 이들인데, 가장 궁금한 대목에서 딱 멈추고 돈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오늘날의 다음 화 결제와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소리 내어 읽고 여럿이 둘러앉아 듣는 이 방식이 다음 강에서 볼 판소리와 소설의 관계로 이어집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홍길동전의 저자 문제에 대한 오늘날의 상황을 가장 정확히 설명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식의 택당집 기록을 근거로 한 허균 저작설이 오랜 통설이지만, 지금 읽히는 국문본이 조선 후기 방각본 계열이라 원작과 곧바로 겹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김만중은 구운몽의 작가이며, 작품 안에 저자가 이름을 밝힌 사실도 없습니다.
문제 2. 구운몽을 두고 갈리는 대표적인 두 독법은 무엇일까요?
한쪽은 부귀영화의 허망함을 드러낸 불교적 서사로 읽고, 다른 쪽은 그 부귀영화를 유례없이 화려하게 그려 냈다는 점에서 욕망을 긍정한 소설로 읽습니다. 본문이 말한 두 독법은 이 대립이며, 어느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것이 작품의 힘입니다.
문제 3. 춘향전의 이본에 따라 춘향의 신분이 달라지는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춘향을 양반의 서녀로 두면 정절을 지킨 열녀담에 가까워지고 기생의 딸로 두면 신분의 벽에 맞선 이야기가 됩니다. 백 종이 넘는 이본은 오류가 아니라 독자들이 이야기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흔적이며, 경판과 완판의 성격 차이도 뚜렷합니다.
문제 4. 흥부전을 조선 후기 사회와 겹쳐 읽을 때 드러나는 그림은 무엇일까요?
재산을 늘려 가는 형과 품을 팔아 사는 아우는 조선 후기 농촌에서 갈라지던 부농과 빈농의 얼굴로 읽힙니다. 상인 몰락이나 무역으로 인한 부의 편중은 이 작품이 다루는 국면이 아니며, 판본마다 가난의 묘사 강도가 다른 점도 이 독법을 뒷받침합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1. 전기수는 가장 궁금한 대목에서 읽기를 멈췄고, 오늘의 플랫폼은 가장 궁금한 대목에서 결제를 요구합니다. 이야기를 파는 방식이 이야기의 모양까지 바꾼다면, 지금 우리가 읽는 이야기들은 어떤 모양으로 다듬어지고 있을까요.

이전: 고전 산문 1강 · 다음: 고전 산문 3강

모던지 · 궁금하면 모던지 GitHub ·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