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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 3강. 소설이 식민지를 기록하는 법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놓고 쓸 수 없을 때, 소설은 사람들이 밥 먹고 셋방 구하고 돈 세는 장면을 아주 자세히 그리기 시작합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1920년대 이후 조선 소설이 세태와 생활 세부를 집요하게 묘사한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일까요?
검열 아래에서 지배 구조를 논설처럼 쓸 수는 없었지만, 셋방과 인력거와 장례 비용의 세부는 그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서구 이론의 영향도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이 시기 묘사의 밀도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염상섭, 조선을 무덤이라 부른 소설

「만세전」(1922년 연재 시작, 1924년 완성)은 원래 제목이 「묘지」였습니다. 도쿄 유학생 이인화가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조선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전부입니다. 사건다운 사건도 없습니다. 그런데 배와 기차에서 그가 보고 듣는 것들, 조선인을 실어 나르는 노동 브로커의 잡담 같은 장면이 쌓이면서 식민지의 구조가 눈앞에 조립됩니다. 그리고 유명한 문장이 터져 나옵니다.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

『삼대』(1931)에서 염상섭은 더 넓은 그물을 칩니다. 재산을 지키는 데 골몰하는 할아버지 조의관, 개화기 기독교 지식인이었으나 무너진 아버지 조상훈, 그 사이에서 판단을 유보하는 손자 조덕기가 한집에 있습니다. 세 세대의 언어가 계속 어긋나죠.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식민지 조선의 계급과 이념 지형을 냉정하게 스캔한 지도로 읽히기도 하고, 결단을 회피한 중간자의 문학으로 비판받기도 합니다.

단편의 두 얼굴, 현진건과 김동인

현진건(1900~1943)의 「운수 좋은 날」(1924)은 아이러니가 무엇인지 가르칠 때 지금도 첫 번째로 꺼내는 작품입니다. 인력거꾼 김첨지에게 유난히 벌이가 좋은 하루가 이어지는데, 그가 집에 가기를 자꾸 미루는 장면에서 독자는 이미 불길함을 감지합니다. 결말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소설의 힘이 사건이 아니라 행복과 불행을 같은 문장 안에 겹쳐 놓는 배치에 있다는 점은 말해 두겠습니다. 참고로 현진건은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서 손기정 선수 사진의 일장기를 지운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릅니다.

김동인(1900~1951)은 다른 쪽으로 갑니다. 「배따라기」(1921)와 「감자」(1925)에서 그는 인물을 냉혹하게 관찰합니다. 복녀가 가난 속에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도덕적 판단 없이 밀고 가는 방식은 당시로선 충격이었습니다. 김동인은 예술의 자율성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후일 그의 행적은 그 주장과 나란히 놓기 어려워집니다.

카프, 문학은 무기가 될 수 있는가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이 결성됩니다. 앞서 최서해가 「탈출기」(1925)에서 굶주림 끝에 폭발하는 인물을 그려 신경향파라 불렸고, 카프는 그 흐름을 조직화했습니다. 이기영의 『고향』(1933~34)은 농촌의 계급 분화를 장편으로 담아낸 성과로 꼽힙니다.

문제는 안에서 터졌습니다. 목적이 앞서면 예술이 죽고 예술이 앞서면 목적이 흐려진다는 논쟁이 몇 해를 잡아먹었죠. 카프의 이론가였던 박영희가 전향하며 남긴 문장은 지금도 인용됩니다.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 이 말을 카프 실패의 판결문으로 읽는 관점이 오래 우세했지만, 전향이 두 차례 검거와 1935년 강제 해산이라는 탄압 속에서 나왔다는 사정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반론도 강합니다. 여기서 잊히기 쉬운 이름이 강경애(1906~1944)입니다. 간도에서 쓴 『인간문제』(1934)는 여성 노동자를 주인공에 앉힌 드문 장편이고, 카프 남성 작가 중심의 서술에서 오래 밀려나 있었습니다.

이태준과 박태원, 도시를 관찰하는 눈

1933년 결성된 구인회는 정반대 방향을 팠습니다. 이태준(1904~?)은 「달밤」과 「복덕방」에서 시대에 밀려난 사람들을 단정한 문장으로 담았고, 『문장강화』(1940)로 한 세대의 글쓰기 교본을 썼습니다. 박태원(1909~1986)은 더 실험적입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은 소설가가 경성 거리를 하루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전부인 작품이고, 『천변풍경』(1936)은 청계천변 사람들의 일상을 카메라처럼 이어 붙입니다. 도시를 현장 조사하듯 관찰하는 이 태도를 고현학(考現學)이라 부릅니다. 줄거리를 포기하고 관찰을 택한 이 선택이, 서사가 허용되지 않는 시대의 형식적 응답이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언어의 선택, 그리고 협력의 기록

백석(1912~1996)은 시집 『사슴』(1936)을 백 부만 찍었습니다. 그 안에는 평안도 방언과 음식 이름과 친척들의 호칭이 빼곡합니다. 표준어와 일본어가 밀려오던 시기에 가장 지역적인 말을 지키는 것이 저항의 한 형태일 수 있음을 그의 언어가 보여 줍니다. 채만식(1902~1950)은 반대편 극단을 택합니다. 『태평천하』(1938)에서 그는 판소리 사설 같은 능청스러운 말투로 지주 윤직원을 치켜세우는 척하면서 조롱합니다. 칭찬의 형식을 빌린 야유죠.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남습니다. 1939년 조선문인협회,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가 만들어지며 전쟁 협력 문학이 조직됩니다.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로 창씨개명하고 학병 지원을 권하는 글을 썼고, 최남선과 김동인, 서정주, 노천명 등의 협력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강제와 자발을 어디서 가르는지, 문학적 성취와 정치적 행적을 어떻게 함께 다룰지는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다만 확인 가능한 사실을 지우지 않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흥미롭게도 채만식은 해방 후 「민족의 죄인」(1948~49)에서 자기 협력을 소설로 고백했는데, 이런 자기 기록은 매우 드뭅니다. 이 문제가 해방 공간에서 어떻게 폭발하는지는 다음 강에서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만세전이 사건다운 사건 없이도 식민지 현실을 드러낼 수 있었던 방식은 무엇일까요?
배와 기차에서 스치는 대화와 풍경이 축적되면서 조선의 상태가 드러납니다. 검열 아래에서 직접 논평할 수 없었기에 관찰의 밀도가 논평을 대신했고, 그 끝에 무덤이라는 판정이 놓입니다.
문제 2. 박영희의 전향 문장을 카프 실패의 판결문으로만 읽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영희는 카프의 핵심 이론가였고 그 문장은 실제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검거와 1935년 해산이라는 압력을 빼고 이 발언만 인용하면 내부 논쟁의 자연스러운 결론처럼 보이게 되어 사정이 왜곡됩니다.
문제 3. 박태원의 소설이 택한 고현학적 태도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구보씨는 경성 거리를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갈 뿐이고 천변풍경은 청계천변의 일상을 이어 붙입니다. 줄거리 대신 관찰을 택한 선택이 서사가 허용되지 않는 시대의 형식적 응답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문제 4. 백석과 채만식이 언어를 통해 택한 전략을 비교한 것으로 옳은 것은 무엇일까요?
백석의 사슴에는 평안도 말과 음식 이름이 빼곡하고, 채만식은 태평천하에서 판소리 사설 같은 말투로 지주를 치켜세우는 척하며 조롱합니다.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언어 전략이 공존했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작품의 문학적 성취와 작가의 정치적 행적을 함께 가르쳐야 할까요, 따로 다루어야 할까요. 채만식처럼 스스로 기록을 남긴 경우와 끝내 침묵한 경우를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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