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 법 4강. 우리가 못 듣게 된 음악
국악이 어렵게 들리는 이유는 음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학교에서 다른 문법만 배웠기 때문입니다.
풀고 시작
두 사람이 만드는 극장
무대에 사람이 둘뿐입니다. 부채를 든 소리꾼과 북을 앞에 놓은 고수입니다. 이 둘이 몇 시간짜리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소리꾼은 노래로 부르는 소리, 말로 풀어 가는 아니리, 몸짓으로 보여 주는 발림을 번갈아 쓰며 인물과 배경을 전부 혼자 만들어 냅니다. 조선 후기에 열두 마당가량 불리던 것이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바탕으로 전해집니다. 이 무대는 오래도록 남자들의 자리였는데, 신재효에게 배운 진채선이 경복궁 낙성연에서 소리를 하며 최초의 여성 명창으로 기록에 남았고, 20세기 들어서는 여성 소리꾼이 판소리의 중심에 섭니다.
흥미로운 쪽은 고수입니다. 그는 반주자가 아닙니다. 장단을 짚으면서 얼씨구, 좋다, 그렇지 하는 추임새로 소리꾼을 밀어 올리고 늘어지는 대목을 조입니다. 객석도 추임새를 넣을 수 있으니 관객은 감상자인 동시에 연주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오래 전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판소리에서 완성된 작품은 무대 위가 아니라 그날 그 자리에서 만들어집니다. 2003년 유네스코가 판소리를 인류 무형유산으로 선정한 이유도 이 살아 있는 전승 방식에 있었습니다.
정해 둔 음악과 그날 만드는 음악
국악은 결이 다른 두 세계를 품고 있습니다. 궁중과 선비의 자리에서 연주되던 정악은 호흡이 아주 길고 표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수제천」이나 종묘제례악을 처음 들으면 선율이 언제 움직이는지조차 잡기 어려울 만큼 느립니다. 반면 판소리와 민요, 사물놀이가 속한 민속악은 감정을 곧장 밀어붙입니다. 같은 국악이라는 이름 아래 완전히 다른 미학이 공존하는 셈입니다.
19세기 말에 나온 산조는 이 민속악의 즉흥성을 독주 형식으로 정리한 갈래입니다. 가야금 산조는 김창조(1856~1919)가 처음 짰다고 전해지며, 아주 느린 진양조로 시작해 중모리와 중중모리를 지나 자진모리로 점점 빨라집니다. 연주자가 스승에게서 이어받은 가락을 자기 호흡으로 다시 짜기 때문에 유파마다 같은 곡이 다르게 들립니다. 시나위는 한 걸음 더 갑니다. 남도의 무속 음악에서 자란 이 합주는 여러 악기가 같은 선법 안에서 각자 즉흥으로 나아가며 겹칩니다. 선법이란 쓸 음과 그 음을 오르내리는 길을 미리 정해 둔 틀입니다. 재즈에 비유되곤 하지만 화음 진행 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선법이라는 공동의 마당 안에서 따로 노는 방식이라 성격이 다릅니다.
장단은 박자표가 아닙니다
서양 악보의 박자는 균등한 칸을 세는 격자입니다. 4분의 4박자는 같은 길이의 네 칸이고 어디를 잘라도 규칙이 같습니다. 장단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장구가 짚는 굿거리나 자진모리는 몇 박인지보다 어디서 힘이 들어가고 어디서 숨을 놓는지의 틀에 가깝습니다. 세 개씩 묶이는 흐름이 많아 넷씩 세는 귀에는 처음에 어긋나게 들리고, 진양조처럼 한 장단이 길어지면 박을 세는 대신 호흡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국악을 오선보로 옮기면 늘 무언가가 빠집니다. 시김새라 부르는 음의 떨림과 흘러내림, 미리 정해지지 않은 늘임과 조임이 기보에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악보가 음악의 전부가 아니라는 1강의 이야기가 여기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다른 격자를 쓰는 음악들
이 문제는 한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인도 음악의 라가(raga)는 음계라고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쓸 수 있는 음과 오르내리는 방식, 강조할 음, 어울리는 정서와 연주하기 좋은 시간대까지 묶은 하나의 규칙 꾸러미입니다. 연주는 박자 없이 음을 하나씩 펼치는 알랍으로 시작해 타블라가 들어오면서 리듬 주기인 탈라 위로 옮겨 가고 점점 빨라집니다. 뒤에서 계속 울리는 탐부라의 지속음이 기준을 잡아 주는데, 서양 음악의 화성 진행에 해당하는 것이 여기에는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가믈란은 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청동 징과 금속 건반 악기가 층층이 겹쳐 울리는 이 합주는 슬렌드로와 펠로그라는 두 음체계를 쓰는데, 어느 쪽도 서양 평균율과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조율이 앙상블마다 조금씩 달라서 악기를 한 세트로 함께 만들고 다른 세트와 섞지 않습니다. 표준 음높이라는 개념 자체가 보편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었다는 뜻입니다. 드뷔시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자바 음악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은 일은 널리 알려져 있고, 20세기 서양 작곡가들이 조성 바깥을 상상하는 데 이런 만남이 자극이 되었습니다.
낯설어진 경위와 지금의 시도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음악들과 멀어졌을까요. 식민지 시기에 궁중 음악을 담당하던 조직은 이왕직아악부로 크게 축소되어 겨우 명맥을 유지했고, 새로 세워진 학교의 음악 시간은 서양식 창가와 오선보로 채워졌습니다. 해방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도 음악 교육의 기본 문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국악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국악을 해독할 훈련을 받지 않은 채로 자란 것입니다.
되살리려는 시도는 이어졌습니다. 1951년 국립국악원이 문을 열었고, 1978년 사물놀이가 마당에서 하던 풍물을 네 사람의 무대 음악으로 옮겨 새로운 관객을 얻었습니다. 최근에는 수궁가의 한 대목을 밴드 사운드에 얹은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2020)가 널리 퍼졌습니다. 여기서 오래된 논쟁이 다시 살아납니다. 원형을 그대로 지켜야 전승이 유지된다는 입장과, 당대의 소리와 섞여야 살아남는다는 입장이 맞섭니다. 어느 쪽도 아직 이기지 않았고, 어쩌면 판소리가 애초에 그날그날 다시 만들어지던 음악이었다는 사실이 이 논쟁을 가장 잘 비추어 줍니다. 듣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자기가 익힌 격자가 유일한 격자가 아님을 아는 일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전통 음악을 지키는 일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당대의 소리와 계속 섞이게 두는 것일까요. 판소리가 매번 다르게 불리던 음악이었다는 사실은 이 물음에 어떤 답을 암시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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