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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와 세계의 미술 3강. 형상을 그리지 않고 세계를 짓기

그리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니라, 그리지 않고도 되는 방법을 천 년 동안 개발한 것입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이슬람권에서 종교 공간에 인물 형상을 두지 않은 근거로 가장 정확한 것은 무엇일까요?
쿠란에는 형상 제작을 금지하는 명시 조항이 없습니다. 창조를 흉내 내는 자를 경고하는 하디스와 우상 숭배 차단이라는 관심이 쌓여 종교 공간의 관행으로 굳었습니다. 그래서 궁전이나 책 삽화 같은 세속 영역에서는 인물이 계속 그려졌습니다.

금지의 자리에서 자라난 문법

이슬람 미술을 두고 흔히 형상이 금지됐다고 말하지만 정확히는 그렇지 않습니다. 쿠란에는 그림을 금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창조를 흉내 내려는 자를 경고하는 하디스와 우상 숭배를 차단하려는 관심이 겹치면서 예배 공간에 인물상을 두지 않는 관행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세속 공간은 달랐습니다. 요르단 사막의 쿠사이르 암라 궁전 욕실에는 8세기에 그려진 인물 벽화가 남아 있습니다.

핵심은 금지가 아니라 대체입니다. 빠진 자리에 세 가지가 들어섭니다. 첫째는 기하 무늬입니다. 별에서 뻗어 나온 선들이 교차하며 벽 전체를 덮는데 시작점도 끝점도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는 아라베스크입니다. 잎과 덩굴이 감기며 이어지다 화면 바깥으로 자라날 것처럼 잘려 나갑니다. 셋째가 서예입니다. 쿠란의 글자 자체가 최고 예술의 자리를 차지했고, 각지고 굵은 쿠픽체와 유려하게 흐르는 나스크체가 벽과 그릇과 책을 채웠습니다. 무한과 반복이라는 성격을 신의 무한성과 연결해 읽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순수한 조형 논리의 전개로 보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로 지은 방

건축으로 가면 이 문법이 삼차원이 됩니다. 스페인 코르도바 대모스크는 785년 착공됐는데, 안에 들어서면 붉은 벽돌과 흰 돌을 번갈아 쌓은 아치가 이중으로 겹쳐 있고 기둥이 숲처럼 늘어섭니다. 어디에도 중심이 없어 시선이 멈추지 못하고 옆으로 흘러갑니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천장에는 무카르나스가 있습니다. 벌집 같은 작은 벽감을 가득 겹쳐 쌓은 장식인데, 빛이 들어오면 무거운 돌 천장이 오히려 부스러지는 듯 보입니다. 16세기 오스만의 건축가 시난은 정반대로 갑니다. 에디르네의 셀리미예 모스크에서 그는 거대한 돔 하나가 내부 전체를 덮게 만들어 공간을 통합했습니다.

타지마할은 무굴 황제 샤 자한이 세상을 떠난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묘당입니다. 1632년경 착공해 1643년 무렵 본체가 섰고 부속 건물은 1650년대에 마무리됐습니다. 흰 대리석 표면에 보석을 잘라 끼워 넣은 상감 무늬가 덮여 있고, 좌우가 거의 완벽한 대칭이며, 앞에는 물길이 열십자로 갈라지는 정원이 놓입니다. 강 건너에 검은 대리석으로 똑같은 건물을 지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전설로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책 속에 접힌 세계

형상이 정말로 활발했던 곳은 책입니다. 페르시아 세밀화는 필사본 삽화로 발전했고, 피르다우시의 서사시 『샤나메』가 가장 자주 그려졌습니다. 15세기 말 헤라트의 비흐자드가 이 분야의 이름난 화가입니다.

세밀화의 화면을 말로 그려 보겠습니다. 궁전 장면인데 건물의 벽이 종이접기를 펼치듯 열려서 안과 밖이 동시에 보입니다. 뒤에 있는 인물이 작아지지 않고 위쪽에 배치되며, 색은 그림자 없이 균일한 청색과 금색으로 채워집니다. 얼굴은 개인의 초상이라기보다 젊은 영웅이나 늙은 현자 같은 유형입니다. 이것을 원근법을 몰랐던 결과로 읽으면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세밀화는 손에 들고 보는 책의 한 면이고, 이야기의 여러 순간과 여러 장소를 한 화면에 겹쳐 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뒤에 무굴의 아크바르 시대가 되면 이 전통이 인도 화가들과 만나 인물의 개성을 훨씬 강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갈라집니다.

돌 전체가 이야기인 사원

인도로 오면 조각이 건물을 덮습니다. 마디아프라데시의 카주라호 사원군은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탑처럼 솟은 외벽 전체에 신과 정령과 무희와 연인들이 층층이 새겨져 있는데, 널리 알려진 성애 장면은 전체 조각의 일부입니다. 그 의미를 두고 밀교적 상징, 우주적 결합의 비유, 왕실 번영의 과시라는 해석이 경쟁하며 어느 쪽도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엘로라의 카일라사 사원은 방식이 놀랍습니다.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산의 바위를 위에서부터 깎아 내려가 건물 하나를 통째로 파냈습니다.

남인도 촐라 왕조의 청동 나타라자상은 도상을 읽는 법을 잘 보여 줍니다. 시바가 불꽃 고리 안에서 한 다리를 들고 춤추는데, 딛고 선 발밑에는 난쟁이가 깔려 있고 손은 넷입니다. 북은 창조의 첫 소리, 불은 파괴, 펼친 손바닥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 밟힌 난쟁이는 무지를 가리킨다고 전승은 설명합니다. 형상 하나하나가 읽어야 할 기호인 셈이죠. 불교 조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에는 부처를 사람 모습으로 새기지 않고 보리수와 법륜과 발자국으로 표시했고, 인물상이 등장한 뒤에도 간다라의 사실적인 옷주름과 마투라의 토착적 양감이 서로 다른 길을 갔습니다.

장식이라는 강등

이제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서구 미술사 서술은 이슬람 미술을 장식 미술이라는 칸에 넣었습니다. 회화와 조각이 순수 미술이고 무늬와 도자기와 직물은 그 아래 응용 분야라는 위계가 유럽 아카데미에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격자에 끼워 넣으면 결과는 뻔합니다. 인체 조각도 대형 회화도 없으니 남는 것은 무늬뿐이고, 예쁘지만 사상이 없다는 평가가 따라붙습니다. 개설서가 이슬람 세계를 몇 쪽으로 지나가는 관행도 여기서 나옵니다.

이슬람 미술이라는 범주 자체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름은 8세기 스페인부터 17세기 인도까지, 세 대륙과 천 년을 하나로 묶습니다. 유럽 미술을 기독교 미술이라 부르지 않고 로마네스크와 고딕과 르네상스로 잘게 나누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한쪽은 시대별로 세분되고 다른 쪽은 종교 이름으로 뭉쳐지는 것이죠. 물론 이슬람이라는 공통 조건이 실제로 작동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다만 그 이름이 내부의 차이를 지운다는 사실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4강에서는 같은 문제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훨씬 폭력적으로 반복되는 장면을 봅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코르도바 대모스크와 셀리미예 모스크가 내부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어떻게 다를까요?
코르도바 대모스크는 붉은 벽돌과 흰 돌을 번갈아 쌓은 이중 아치와 기둥이 숲처럼 반복돼 시선이 한곳에 머물지 못합니다. 16세기 시난은 반대로 갔습니다. 에디르네의 셀리미예 모스크에서 그는 거대한 돔 하나가 내부 전체를 덮게 해 공간을 통합했습니다.
문제 2. 페르시아 세밀화가 인물과 공간을 다루는 방식으로 옳은 것은 무엇일까요?
세밀화는 벽을 펼쳐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보여 주고, 먼 인물을 작게 그리는 대신 위쪽에 배치합니다. 손에 들고 보는 책의 한 면에 여러 장소와 순간을 겹쳐 담는 것이 목적이므로, 원근법을 몰랐다는 설명으로는 아무것도 해명되지 않습니다.
문제 3. 촐라 왕조의 나타라자상에서 시바가 밟고 있는 난쟁이는 무엇을 뜻할까요?
나타라자상은 기호의 조합입니다. 북은 창조의 첫 소리, 불은 파괴, 펼친 손바닥은 두려워 말라는 뜻이며, 밟힌 난쟁이는 무지를 가리킨다고 전승이 설명합니다. 형상 하나하나를 읽어야 의미가 열립니다.
문제 4. 본문이 지적한 이슬람 미술이라는 범주 자체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유럽 미술은 로마네스크와 고딕과 르네상스처럼 시대별로 잘게 나누면서, 이슬람권은 종교 이름 하나로 묶습니다. 공통 조건이 실제로 작동했다는 반론도 있지만, 그 명명이 내부의 시대차와 지역차를 지우는 대가를 치른다는 점은 함께 봐야 합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무늬를 그린 사람과 인물을 그린 사람 가운데 한쪽만 예술가로 부르는 기준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 기준을 걷어 내면 미술사의 목차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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