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보는 법 1강. 그림 앞에서 3초 만에 지나치는 이유
우리가 한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은 컵라면이 익기도 전에 끝납니다. 인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볼 것을 배운 적이 없어서입니다.
풀고 시작
17초는 실제로 측정된 숫자입니다
심리학자 제프리 스미스와 리사 스미스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한 작품 앞에 얼마나 서 있는지를 조용히 측정해 2001년에 발표했습니다. 중앙값은 17초였습니다. 시카고 미술관에서 같은 방식으로 측정한 2017년 연구에서도 21초 정도로 사정은 비슷했죠. 그런데 이 숫자에는 제목표를 읽고 사진을 찍는 시간까지 들어 있습니다. 순수하게 그림을 본 시간은 그보다 짧다는 뜻입니다. 이 결과를 들으면 대부분 민망해하지만 민망해할 일이 아닙니다. 눈은 할 일이 없으면 달아납니다. 우리가 오래 버티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집중력 부족이 아니라 무엇을 봐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미술 감상은 타고난 감수성의 문제로 오해되곤 하는데 실제로는 읽기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글자를 배운 적 없는 사람에게 두꺼운 책을 쥐여 주고 왜 감동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는 없으니까요.
먼저 형식을 봅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 봅니다. 의미를 찾기 전에 화면 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부터 봅니다.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은 『미술사의 기초개념』(1915)에서 양식을 다섯 쌍의 대립으로 정리했는데, 그중 우리가 당장 써먹을 것은 윤곽선이 또렷한가 아니면 붓질에 녹아 있는가, 화면이 평평한가 아니면 깊이로 파고드는가입니다. 여기에 세 가지만 더하면 됩니다. 무엇이 화면의 어디에 놓였는가, 어떤 색이 어떤 색 옆에서 튀는가, 그리고 내 눈이 어느 경로로 움직이는가입니다. 색에 관해서는 한 가지만 기억해도 충분합니다. 색은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색 옆에 있을 때 다르게 보입니다. 요제프 알베르스는 『색채의 상호작용』(1963)에서 똑같은 회색이 어두운 바탕 위에서는 밝아 보이고 밝은 바탕 위에서는 어두워 보인다는 것을 거듭 실험으로 보여 주었죠. 어떤 색이 유난히 튀어 보인다면 그 색이 강해서가 아니라 옆에 놓인 색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1658~1660년경,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말로 그려 보겠습니다. 왼쪽 위 창에서 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앞치마를 두른 여인이 고개를 숙인 채 항아리를 기울입니다. 우유 줄기는 화면 한복판에서 가늘게 이어지다가 그릇으로 떨어지죠. 탁자 위 빵 껍질에는 흰 점들이 알갱이처럼 얹혀 있고, 뒤쪽 벽은 거의 비어 있어서 못 하나와 못자국까지 보입니다. 시선이 창에서 출발해 여인의 얼굴을 지나 우유 줄기로 미끄러진 뒤 빵에서 멈추도록 화면이 설계된 것입니다. 벽이 거의 비어 있다는 사실이 이 동선을 지켜 줍니다. 다른 볼거리가 없으니 눈은 자꾸 되돌아와 여인과 우유 줄기로 갑니다. 이 경로를 한 번 따라가 보는 데만 이미 17초를 훌쩍 넘깁니다.
제목은 나중에 읽습니다
제목표는 강력한 스포일러입니다. 먼저 읽으면 그때부터 눈은 확인 작업만 합니다. 그러니 3분쯤 혼자 본 뒤에 읽는 편이 낫습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175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예로 들어 보죠. 비 갠 뒤의 인왕산 바위 덩어리를 젖은 먹으로 넓게 쓸어내렸고, 산허리에는 물안개가 흰 띠로 남아 있으며, 아래쪽 소나무 사이에 기와집 한 채가 놓여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다음이 해석의 영역이죠. 이 그림을 병석의 벗 이병연을 향한 애도로 읽는 독법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화제에 적힌 날짜와 이병연의 죽음을 잇는 추정에 기댄 읽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정 사연을 걷어 내고 비 갠 산의 물기 자체를 붙잡은 그림으로 보는 읽기도 나란히 존재합니다. 정보는 그림을 닫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여는 데 씁니다.
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흔한 오해를 정리합니다. 이해하면 좋아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어떤 그림은 끝까지 알아본 뒤에도 끝내 취향에 맞지 않고, 어떤 그림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사람을 붙잡습니다. 미술을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좋아할 목록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왜 끌리는지 또는 왜 안 끌리는지를 말할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그 언어가 생기면 취향은 오히려 더 뾰족해집니다.
그래서 다음 관람에서 딱 한 가지만 해 보시길 권합니다. 전시장을 다 도는 대신 마음이 잠깐 걸린 작품 세 점만 고르고 각각 앞에서 3분씩 서 있는 것입니다. 3분은 생각보다 깁니다. 첫 30초가 지나면 눈이 할 일을 찾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아까 못 본 것들이 올라옵니다. 인물의 손이 얼굴에 비해 이상하게 크다든지, 화면 오른쪽 절반이 통째로 비어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죠. 그 발견을 한 문장으로 적어 두면 그날 본 것은 사라지지 않고 남습니다. 다음 강에서는 화가가 손에 쥔 재료가 그 화면을 어디까지 미리 결정해 버렸는지를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어떤 작품을 아주 오래 보았는데도 끝내 좋아지지 않았다면, 그 시간은 낭비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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