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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보는 법 2강. 물감 튜브가 없었다면 인상주의도 없었습니다

화가가 무엇을 그릴지 정하기 전에, 손에 쥔 재료가 이미 그릴 수 있는 것의 목록을 좁혀 놓았습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1841년 존 고프 랜드가 특허를 낸 금속 물감 튜브는 회화에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했나요?
그전까지 물감은 돼지 방광에 담아 썼기 때문에 한 번 뚫으면 다시 막기 어려웠고 들고 다니기도 곤란했습니다. 눌러 짜서 쓰고 다시 막아 둘 수 있는 금속 튜브가 나오면서 화가는 화실 밖에서 몇 시간이고 작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화는 갑자기 발명된 것이 아닙니다

미술사 교과서에는 오랫동안 얀 반 에이크가 유화를 발명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조르조 바사리가 16세기에 그렇게 써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8년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석굴의 7세기 벽화에서 기름을 매재로 쓴 층이 확인되면서 이 이야기는 정정되었습니다. 반 에이크가 한 일은 발명이 아니라 완성에 가깝습니다. 통설이 오래 버틴 이유도 이해할 만합니다. 그의 화면이 앞선 어떤 그림과도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죠. 달걀노른자로 안료를 개는 템페라는 금방 말라서 붓 자국을 부드럽게 잇기가 어렵고, 색을 겹쳐 깊이를 만들기도 힘듭니다. 반면 기름은 천천히 마릅니다. 화가는 얇고 투명한 층을 몇 번이고 덧입힐 수 있게 되었죠.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여인의 초록 드레스가 안쪽에서 빛나는 것처럼 보이고 천장에 걸린 놋쇠 샹들리에가 창빛을 받아 금속처럼 번뜩이는 것은 이 여러 겹 덕분입니다. 그 샹들리에에는 초가 딱 하나만 켜져 있죠. 뒤쪽 벽에는 볼록거울이 걸려 있는데 나무 테두리를 따라 손톱만 한 원형 장면이 열 개 빙 둘러 그려져 있고, 그 옆에 묵주 한 줄이 걸려 있습니다. 이런 세부는 붓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몇 번이고 다시 손을 댈 수 있어야 나옵니다. 재료가 느리게 마른다는 성질 하나가 그림의 밀도를 통째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벽화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정반대의 재료도 있습니다. 프레스코는 갓 바른 젖은 회벽에 안료를 물에 개어 칠하는 기법입니다. 회벽이 마르면서 안료가 벽 자체와 하나로 굳기 때문에 색은 몇백 년을 갑니다. 대신 하루에 칠할 수 있는 면적만큼만 회를 발라야 하고, 마르기 시작하면 손을 뗄 수밖에 없습니다. 고쳐 그리려면 그 부분을 쪼아 내고 다시 발라야 하죠. 이렇게 하루치로 나뉜 구획을 조르나타(giornata)라고 부르는데, 벽화 표면을 비스듬히 들여다보면 그 이음매가 지금도 희미하게 드러납니다.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1512년까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에 매달려 있을 때, 그는 매일 아침 그날 끝낼 분량을 미리 확정한 채 비계에 올랐습니다. 프레스코가 웅장하고 단순한 형태로 기우는 것은 화가의 성격 탓이 아니라 머뭇거림을 허락하지 않는 재료의 성질 때문입니다.

먹은 지우개가 없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필묵은 또 다른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종이나 비단은 먹을 순식간에 빨아들이고 덧칠은 그대로 얼룩이 됩니다. 그래서 화가는 붓을 대기 전에 이미 그림을 끝내 놓아야 하고, 화면의 빈 곳은 미완성이 아니라 여백이라는 적극적인 요소가 됩니다. 먹물을 흥건히 흘려 번지게 하는 발묵(潑墨)은 이 통제 불가능성을 오히려 표현으로 뒤집은 방법입니다. 남송의 승려 화가 목계의 「육시도」(六柿圖, 13세기, 교토 다이토쿠지)를 보면 감 여섯 개가 한 줄로 놓여 있는데, 어떤 것은 거의 검고 어떤 것은 윤곽선만 남아 있으며 배경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먹의 농담 차이 하나로 여섯 개의 무게가 전부 달라지죠. 조선에서도 같은 재료가 또 다른 결과를 냈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1447,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는 왼쪽 아래 나지막한 현실의 산에서 출발해 오른쪽 위 기암괴석 사이 복사꽃 핀 도원으로 이어집니다. 두루마리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 보던 관례를 뒤집어 놓은 배치죠. 안평대군이 꾼 꿈을 사흘 만에 그려 냈다고 발문에 적혀 있는데, 그런 속도가 가능했던 것도 겹쳐 쌓지 않는 재료였기 때문입니다. 유화가 시간을 들여 쌓아 올리는 예술이라면 수묵은 되돌릴 수 없는 한 번의 획을 거는 예술입니다.

그렇다면 재료가 전부일까요

이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모네는 1890년부터 이듬해까지 같은 건초더미를 계절과 시간대를 바꿔 가며 스무 점 넘게 그렸습니다. 해가 옮겨 가는 동안 캔버스를 갈아 가며 작업하려면 물감이 들판에 함께 나와 있어야 했죠. 1841년 존 고프 랜드가 금속 튜브 특허를 내기 전처럼 돼지 방광에 물감을 담아 다녔다면 애초에 시도할 수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장 르누아르는 아버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튜브 물감이 없었다면 세잔도 모네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물감을 들고 들판에 나간 사람이 남성 화가만은 아니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는 1874년 첫 인상주의 전시에 참여한 유일한 여성 화가였고 이후 여덟 번의 전시 가운데 한 번만 빼고 모두 이름을 올렸습니다. 마네가 밝은 색과 야외 작업으로 옮겨 간 데에는 모리조의 권유가 있었다는 평가도 따라붙습니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곤란합니다. 같은 시기에 철도가 놓여 화가들이 파리 근교로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일본 목판화의 대담한 구도가 유입되었으며, 사진이 기록의 임무를 가져갔고, 살롱 심사에서 밀려난 화가들이 독자 전시를 열었습니다. 재료는 가능성의 문을 열지만 그 문으로 걸어 들어갈지는 결정하지 않습니다. 같은 튜브 물감을 쓴 아카데미 화가들은 끝까지 화실에 남아 신화 속 인물을 그렸으니까요. 다음 강에서는 재료보다 더 오래 미술을 지배한 약속, 원근법을 다루겠습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반 에이크가 유화를 발명했다는 통설을 본문은 어떻게 수정했나요?
바미얀 석굴의 7세기 벽화에서 기름을 매재로 쓴 층이 확인되면서 발명이라는 표현은 유지되기 어려워졌습니다. 반 에이크의 기여는 얇고 투명한 층을 겹쳐 깊이를 만드는 방식을 밀어붙인 데 있습니다.
문제 2. 프레스코가 웅장하고 단순한 형태로 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날 바른 회벽이 마르면 그 부분은 확정됩니다. 수정하려면 쪼아 내고 다시 발라야 하므로 화가는 머뭇거릴 수 없고, 이 제약이 화면의 결단력 있는 형태로 이어집니다.
문제 3. 본문이 목계의 「육시도」에서 주목한 것은 무엇인가요?
지필묵은 덧칠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한 번의 획과 먹의 농도가 곧 결과가 됩니다. 이 강은 재료의 성질이 표현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보는 자리이므로 상징 해석보다 농담의 작동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문제 4. 재료가 양식을 결정한다는 설명에 본문이 덧붙인 단서는 무엇인가요?
튜브 물감을 똑같이 쓴 아카데미 화가들은 화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철도와 일본 판화와 사진과 전시 제도가 함께 작동했으므로, 재료 하나로 양식을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1. 디지털 도구는 무한한 되돌리기를 허용합니다. 되돌릴 수 없다는 제약이 사라진 자리에서 무엇이 함께 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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