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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는 법 3강. 블루스에서 K팝까지

오늘 우리가 듣는 대중음악의 큰 줄기 대부분은 미국 남부 흑인 공동체가 만든 소리에서 갈라져 나왔고, 그 사실은 오랫동안 계약서에 적히지 않았습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블루스에서 말하는 블루 노트는 무엇을 가리키나요?
블루 노트는 서양 음계의 격자에 딱 맞지 않게 셋째와 다섯째와 일곱째 음을 살짝 내려 내는 음입니다. 피아노 건반으로는 정확히 짚을 수 없어 목소리와 기타가 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집니다. 열두 마디 진행은 블루스의 형식일 뿐 음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들판의 외침이 형식이 되기까지

19세기 말 미국 남부의 목화밭에서는 한 사람이 길게 외치면 다른 사람들이 받아 넘기는 노래가 불렸습니다. 이 부르고 답하기(call and response) 방식은 서아프리카 음악의 오래된 관습이 노동요와 교회 음악을 거쳐 살아남은 형태입니다. 여기에 블루 노트와 열두 마디 구조가 얹히면서 블루스가 됩니다. 가사는 대개 한 줄을 부르고, 같은 줄을 한 번 더 부른 뒤, 세 번째에 반전을 놓습니다. 두 번째 줄을 부르는 동안 세 번째 줄을 지어낼 시간을 버는 셈이니, 형식 자체가 즉흥을 위한 장치입니다.

블루스가 상품이 된 시점은 명확합니다. 1920년 마미 스미스의 「Crazy Blues」가 예상 밖으로 크게 팔리면서 음반사들은 흑인 청중이 돈을 쓴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이후 남부를 돌며 녹음기를 돌립니다. 우리가 듣는 초기 블루스는 예술 보존이 아니라 시장 조사의 부산물로 남은 소리입니다.

즉흥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다

뉴올리언스의 행진 악대와 댄스홀에서 자란 재즈는 처음에 여러 악기가 동시에 얽히는 합주였습니다. 판을 뒤집은 사람이 루이 암스트롱(1901~1971)입니다. 1920년대 중후반 핫 파이브와 핫 세븐 녹음에서 그는 트럼펫 솔로를 곡의 중심에 세웠고, 그때부터 재즈는 누가 무엇을 연주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순간 무엇을 만들어 냈느냐의 음악이 됩니다.

1940년대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의 비밥은 이 흐름을 끝까지 밉니다. 춤추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화음이 복잡해졌고, 재즈는 오락에서 감상의 대상으로 옮겨 갑니다. 대중을 잃는 대신 예술의 지위를 얻은 이 교환은 이후 여러 장르에서 반복됩니다.

전기 기타와 사라진 로열티

1950년대에 기타에 픽업을 달고 앰프에 연결하자 소리의 균형이 뒤집힙니다. 기타가 관악기를 이기게 되었고, 왜곡된 음색과 피드백이 결함이 아니라 표현으로 바뀝니다. 척 베리의 「Johnny B. Goode」(1958)는 노래가 나오기도 전에 기타가 먼저 쏟아지는 도입부로 문을 열고, 리틀 리처드의 「Tutti Frutti」(1955)는 뜻이 없는 외침 한 줄과 두들기는 피아노로 곡을 밀어붙입니다. 이 두 곡이 록의 문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돈의 흐름은 소리의 흐름과 달랐습니다. 백인 가수가 흑인 원곡을 다시 부른 커버 음반이 라디오를 타고 훨씬 크게 팔렸습니다. 「Tutti Frutti」는 팻 분의 커버가 더 넓은 시장에 닿았고, 빅 마마 손튼이 1952년 먼저 녹음한 「Hound Dog」은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버전으로 세계적 히트가 되었지만 손튼에게 돌아간 몫은 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척 베리의 「Maybellene」에는 곡을 틀어 준 방송 관계자가 공동 저작자로 이름을 올려 오랫동안 수익을 나눠 가졌습니다. 저작권은 소리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서류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을 보호했습니다.

잘라 붙이기가 창작인가

1973년 뉴욕 브롱크스의 한 아파트 파티에서 디제이 쿨 허크는 같은 음반 두 장을 번갈아 틀어 사람들이 가장 뜨겁게 반응하는 타악기 구간만 계속 이어 붙였습니다. 원곡에서 몇 초짜리 조각을 떼어 새 바탕으로 삼는 이 발상에서 힙합이 시작됩니다. 샘플링은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조각을 어디서 끊고 무엇 위에 겹치느냐로 새 의미를 만드는 기법입니다. 퍼블릭 에너미의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1988)은 사이렌과 관악기 조각 수십 개를 층층이 쌓아 소음에 가까운 밀도를 만들었습니다.

법이 따라붙은 것은 그다음입니다. 1991년 미국 법원은 비즈 마키가 허락 없이 쓴 샘플을 두고 명백한 침해라고 판단했고, 이후 사전 이용 허락이 업계 표준이 됩니다. 2005년의 또 다른 판결은 녹음물에서는 아주 짧은 조각이라도 허락을 받으라는 취지로 더 엄하게 나갔지만, 이 기준은 지금도 법원마다 견해가 갈리는 쟁점입니다. 클리어런스 비용이 커지자 신인이 만들 수 있는 음악의 종류가 줄었다는 지적이 뒤따랐습니다. 저작권이 창작을 보호하는 동시에 다음 창작을 막을 수 있다는 문제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대중음악과 K팝의 회계

한국 대중음악도 바깥의 소리를 흡수하며 자랐습니다. 1935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유행가 시대를 열었고, 해방 이후 미군 부대 무대는 연주자들이 최신 미국 음악을 익히는 학교였습니다. 신중현은 그 경험 위에서 「미인」(1974) 같은 곡으로 한국식 록을 세웠고, 김민기의 「아침이슬」(1971)은 청년 문화의 노래가 되었다가 금지곡이 됩니다. 1975년의 단속으로 다수 음악인이 활동을 멈췄고, 이는 대중음악사에서 국가가 소리를 직접 검열한 국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랩과 댄스를 주류 방송의 한복판에 올려놓았습니다.

오늘의 K팝은 기획사가 연습생을 선발해 몇 년간 훈련시키고, 해외 작곡가를 포함한 대규모 협업으로 곡을 모으고, 안무와 영상까지 묶어 내보내는 산업입니다. 완성도는 이 통합 관리에서 나오지만 비용도 여기서 발생합니다. 제작비를 회수한 뒤에 정산하는 구조여서 데뷔한 뒤에도 상당 기간 실수령이 적을 수 있고, 장기 전속계약 분쟁이 이어지자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전속계약서를 도입했습니다. 팬덤의 반복 구매가 성적을 떠받치는 구조 역시 계속 논쟁거리입니다. K팝을 이해한다는 것은 노래와 함께 그 노래를 만든 계약을 읽는 일입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루이 암스트롱이 1920년대 재즈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요?
초기 뉴올리언스 재즈는 여러 악기가 동시에 얽히는 합주였는데, 암스트롱의 녹음 이후 한 연주자의 솔로가 곡의 중심축이 됩니다. 악보 충실성이나 편성 교체는 이 변화의 방향과 반대입니다.
문제 2. 1950년대 커버 음반을 둘러싼 문제로 본문이 지적한 것은 무엇인가요?
흑인 연주자가 만든 곡을 백인 가수가 다시 불러 더 큰 시장에 닿았고, 저작자 등록 관행까지 겹치며 만든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이 작았습니다. 커버 자체가 금지된 적은 없었고 문제는 분배 구조였습니다.
문제 3. 1991년 미국 법원의 샘플링 판결이 음악 제작에 남긴 결과는 무엇인가요?
무단 사용을 침해로 본 판단 이후 사전 클리어런스가 관행이 되었고 제작 비용 구조가 달라졌습니다. 짧은 조각의 허용 여부는 이후 판결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려 확정된 기준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문제 4. 본문이 설명한 K팝 산업 구조의 특징으로 맞는 것은 무엇인가요?
훈련과 제작 비용을 먼저 투입하고 회수 후 배분하는 구조여서 데뷔 뒤에도 정산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장기 계약 분쟁이 이어진 끝에 2009년 표준전속계약서가 도입되었으므로 관련 문서가 없다는 서술은 사실과 다릅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1. 샘플링과 표절을 가르는 선은 조각의 길이일까요, 새로 만들어진 의미일까요. 그 선을 법이 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창작자 공동체가 정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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