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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보는 법 3강. 세계를 납작하게 만드는 기술

원근법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법칙이 아니라, 한쪽 눈을 감고 고개를 고정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는 약속입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선원근법에 대한 설명 중 본문의 입장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인가요?
선원근법은 한 눈으로, 한 지점에 고정된 채, 평평한 화면 너머를 본다는 가정 위에서 작동합니다. 실제 시각은 두 눈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이루어지므로, 원근법은 자연법칙이라기보다 강력하고 유용한 약속입니다.

세례당 앞에서 거울을 든 남자

1413년 무렵 피렌체 대성당 정문에서 몇 걸음 안쪽에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였죠. 그는 맞은편 산 조반니 세례당을 작은 패널에 정밀하게 그린 뒤 화면 소실점 자리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러고는 패널 뒷면에서 그 구멍으로 눈을 대고, 앞쪽에 거울을 들어 자기 그림을 비춰 보게 했습니다. 거울을 치우면 실제 세례당이, 거울을 대면 그림이 보이는데 둘이 겹쳐 보일 만큼 일치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안토니오 마네티가 남긴 전기로 전해지고 패널 자체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20여 년 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론』(1435)에서 이것을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림을 열린 창문으로 여기고 그 너머를 본다고 생각하라는 유명한 대목입니다.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1425~1427년경,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벽면이 뚫려 안쪽으로 궁륭 천장이 깊이 물러나 보이는 것이 그 결과였습니다.

창문에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창문에는 깨알 같은 약관이 딸려 있습니다. 관람자는 눈이 하나여야 하고, 정해진 한 지점에서,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보아야 합니다. 실제 사람은 두 눈으로 보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그때마다 상은 달라지죠.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1927)에서 원근법을 자연의 복제가 아니라 한 시대가 선택한 세계 이해의 형식이라고 논했습니다. 이 주장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서, 원근법이 인간 시각의 실제 기하와 상당히 부합한다는 반박이 이어졌습니다. 다만 어느 편에 서든 한 가지는 남습니다. 원근법은 세계를 보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이며, 그것을 택한 순간 다른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포기했는지는 다른 전통을 보면 선명해집니다.

산수화는 세 개의 눈을 씁니다

북송의 화가 곽희는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산을 보는 세 가지 방식을 정리했습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고원(高遠), 앞산 너머로 뒷산을 들여다보는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으로 평평하게 내다보는 평원(平遠)입니다. 핵심은 이 셋을 한 화면 안에 함께 쓴다는 데 있습니다. 곽희의 「조춘도」(早春圖, 1072,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에서 관람자는 계곡 아래 나무꾼과 눈높이를 맞추다가, 어느새 봉우리를 올려다보고, 다시 안개 너머 먼 산을 굽어봅니다. 고정된 자리가 없기 때문에 시선은 화면 안을 걸어 다니게 되죠. 두루마리 그림이라면 이 걸음은 문자 그대로 왼쪽으로 펼쳐 가며 이어집니다. 페르시아 세밀화도 비슷하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점과 평평한 색면을 함께 씁니다. 정원 담장 안쪽과 바깥쪽이 한 화면에 동시에 보이고, 인물들은 서로 가리지 않도록 층층이 배치되며, 멀리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작아지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을 다 보여 주는 편이 한 자리에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죠. 이들은 원근법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한 순간에 화면을 묶어 둘 이유를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가들이 창문을 깬 순간

유럽에서 이 약속을 안쪽에서 무너뜨린 사람은 폴 세잔이었습니다.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1893년경, 시카고 미술관) 앞에 서면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흰 천이 걸쳐진 탁자의 왼쪽 모서리 선과 오른쪽 모서리 선이 높이가 달라 이어지지 않고, 사과는 기울어진 바구니에서 천 위로 쏟아져 있으며, 오른쪽 접시에 높이 쌓인 과자는 약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인데 비스듬히 기운 병은 옆에서 본 모습입니다. 대상을 오래 보는 동안 실제로 일어나는 시선의 이동을 화면에 남긴 것이죠. 파블로 피카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1907, 뉴욕 현대미술관)에는 벌거벗은 다섯 인물이 각진 면으로 쪼개진 채 서 있고, 오른쪽 아래 인물은 등을 보이면서 동시에 얼굴을 정면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이는 화가가 인체 구조를 몰라서가 아니라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겹쳐 놓았기 때문이죠. 이 그림을 피카소의 화실에서 본 조르주 브라크는 이듬해부터 그와 나란히 작업하며 입체주의를 함께 밀고 나갔습니다.

이 파괴에는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1839년 공표된 다게레오타이프 이후 사진은 눈앞의 광경을 원근법대로 정확히 기록하는 일을 훨씬 싸고 빠르게 해냈습니다. 화가 폴 들라로슈가 이를 보고 회화는 죽었다고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인용되지만, 이 발언은 확실한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일화로 봐야 합니다. 다만 사정 자체는 분명했습니다. 기록이라는 임무를 넘긴 회화는 다른 질문으로 옮겨 갔고, 결국 화면을 창문으로 여기던 습관 자체가 심문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낯설어진 그림을 누가 예술이라고 승인해 주었을까요. 다음 강에서 미술관과 시장이라는 장치를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브루넬레스키의 세례당 실험에서 거울이 한 역할은 무엇인가요?
패널 뒷면 구멍에 눈을 대고 거울을 들었다 치우며 그림과 실물을 번갈아 보는 장치였습니다. 이 실험의 요점은 한 눈, 한 지점이라는 조건에서 그림이 실물과 겹쳐 보인다는 사실의 확인이었습니다.
문제 2. 원근법을 두고 파노프스키가 내놓은 견해를 본문은 어떻게 다루었나요?
파노프스키는 원근법을 자연의 복제가 아니라 한 시대가 선택한 세계 이해의 형식으로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원근법이 인간 시각의 실제 기하와 상당히 부합한다는 반박이 이어졌고, 본문은 어느 편에 서든 원근법이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남는다고 정리했습니다.
문제 3. 곽희의 삼원법이 선원근법과 다른 지점은 무엇인가요?
고원과 심원과 평원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본 모습이고 한 화면에 함께 쓰입니다. 그래서 시선은 한 창문에 붙박이는 대신 화면 안을 걸어 다니게 됩니다.
문제 4. 들라로슈가 회화의 죽음을 말했다는 일화를 본문은 어떻게 처리했나요?
널리 퍼진 일화이지만 확실한 출처가 없으므로 그대로 사실처럼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진이 기록의 임무를 가져가면서 회화가 다른 질문으로 옮겨 갔다는 정황 자체는 여러 자료로 뒷받침됩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1. 오늘 우리가 보는 화면 대부분은 카메라 렌즈가 만든 선원근법 이미지입니다. 이 습관은 우리가 공간을 상상하는 방식을 어디까지 좁혀 놓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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