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보는 법 4강. 누가 이것을 예술이라 부르나
소변기 하나를 전시대 위에 올려놓자 예술의 정의가 통째로 흔들렸습니다. 문제는 물건이 아니라 그것을 올려놓은 자리였습니다.
풀고 시작
왕의 수집품이 시민의 것이 된 날
1793년 8월 10일, 파리의 루브르 궁이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왕정이 무너진 지 꼭 일 년 되는 날이었죠. 그전까지 이 그림들은 왕과 귀족의 방에 걸려 있던 사유물이었고, 보려면 소유자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국민의 재산이 되어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전환은 그림의 지위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제단화는 기도의 대상이기를 그만두고 감상의 대상이 되었고, 초상화는 가문의 기록이기를 그만두고 화가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미술관은 작품을 원래 있던 자리에서 뜯어내 감상이라는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는 기계였던 셈입니다.
흰 벽이라는 발명품
그다음 발명은 벽 자체였습니다. 19세기 살롱 전시 사진을 보면 그림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액자끼리 맞붙은 채 빼곡히 걸려 있습니다. 지금은 정반대죠. 흰 벽, 창문 없음, 그림자 없는 조명, 작품 사이의 넉넉한 여백. 브라이언 오도허티는 1976년 연재한 글에서 이 공간을 화이트 큐브라 부르며, 그것이 중립적인 배경인 척하지만 실은 대단히 강력한 장치라고 지적했습니다. 시간도 날씨도 바깥세상도 지워진 방에서 작품은 영원하고 자족적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방에 들어간 물건은 무엇이든 일단 봐 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이 마지막 성질을 누군가 시험해 보리라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소변기가 던진 질문
1917년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는 회비만 내면 누구의 작품이든 전시한다고 공언했습니다. 그해 R. 머트라는 이름으로 도기 소변기 하나가 접수됩니다. 「샘」(Fountain, 1917)이었습니다. 가게에서 사 온 기성품 소변기를 벽에 붙이는 대신 90도 눕혀 받침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었죠. 위원회는 결국 이것을 전시하지 않았고, 남은 것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사진 한 장뿐입니다. 그 사진 속에서 소변기는 배수구가 위를 향한 채 놓여 있고, 왼쪽 아래 테두리에 검은 글씨의 서명이 보입니다. 원본은 사라졌고 지금 미술관에 있는 것들은 후대에 만든 복제본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가 누구인지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마르셀 뒤샹이 1917년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는 여자 친구 한 명이 소변기를 조각으로 보냈다는 대목이 있어서, 시인 엘자 폰 프라이타크로링호벤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작가가 누구든 질문은 남습니다. 손으로 만들지 않았고 아름답지도 않은 공산품이 왜 예술이 되는가. 철학자 아서 단토는 1964년 논문 「예술계」에서 눈으로는 구별되지 않는 두 물건 중 하나만 예술이 되는 것은 그것을 둘러싼 이론과 역사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조지 디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예술계라는 제도가 감상 후보 자격을 수여한다고 정리했죠. 이 제도론에는 강한 반론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의 좋고 나쁨은 어디서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승인은 설명해도 가치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죠.
값을 매기는 손들
실제로 승인은 여러 손을 거칩니다. 화랑이 작가를 발굴하고, 비평가가 언어를 붙이고, 수집가가 사들이고, 미술관이 소장하면 그 작가의 이름은 역사에 편입됩니다. 경매 낙찰가는 이 과정의 결과를 숫자로 보여 주지만 원인은 아닙니다. 그래서 미술의 가치가 시장이 만든 거품이라는 냉소도, 시장은 이미 정해진 평가를 뒤늦게 따라올 뿐이라는 반박도 함께 존재합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미술관 수장고에 들어간 이름과 들어가지 못한 이름의 차이는 재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성 작가와 비서구권 작가가 오랫동안 그 문 앞에서 되돌아섰던 사정도 여기에 있습니다. 게릴라 걸스는 198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근대 미술 전시실을 직접 세어 보고, 작가 중 여성은 5퍼센트가 되지 않는데 걸린 누드의 85퍼센트는 여성이라는 숫자를 포스터에 적었습니다. 여성이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벗어야 하느냐는 문장이 그 위에 얹혔죠. 누가 승인하느냐는 질문은 이렇게 곧바로 누가 빠져 있느냐는 질문이 됩니다.
이 구조가 가장 아프게 드러나는 자리가 약탈 문화재 논쟁입니다. 대영박물관의 파르테논 조각은 19세기 초 엘긴 백작이 반출한 것이고, 베냉 왕국의 청동 부조들은 1897년 영국군의 원정 과정에서 흩어졌습니다. 조선의 외규장각 의궤는 1866년 프랑스군이 가져갔다가 2011년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습니다. 반환을 요구하는 쪽은 취득 과정 자체가 폭력이었고 유물의 의미는 그 땅에서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반대쪽은 2002년 보편 박물관 선언처럼 여러 문명을 한자리에서 견주어 보는 장소의 가치를 들고, 보존과 접근성을 근거로 삼습니다. 어느 쪽도 상대의 논거를 간단히 지울 수 없다는 점이 이 논쟁의 핵심입니다. 결국 미술관은 중립적인 창고가 아니라 무엇을 예술로 만들고 누구의 것으로 두는지를 계속 결정하는 장소입니다. 다음 과목에서는 이 제도가 정전으로 삼아 온 서양 미술사를 처음부터 다시 따라가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어떤 작품이 미술관에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진지하게 볼 가치를 얻는다면, 미술관 밖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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