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문명 1강. 금속과 재료: 시대의 이름이 된 물질
석기, 청동기, 철기. 인류는 자기 역사를 왕조나 종교가 아니라 그 시대가 다룰 줄 알았던 재료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풀고 시작
시대 구분이 곧 재료 기술사다
역사 교과서의 석기, 청동기, 철기라는 구분은 19세기 덴마크의 톰센(C. J. Thomsen)이 박물관 유물을 정리하며 제안한 틀입니다. 왜 이 구분이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 사회가 다룰 수 있는 재료가 그 사회의 무기, 농기구, 경제, 권력 구조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청동기 문명은 기원전 3000년 무렵 근동에서 본격화됐고, 철기는 기원전 1200년 전후 지중해 동부의 청동기 문명 붕괴기를 지나며 확산됐습니다. 철광석은 구리나 주석보다 훨씬 흔했기에, 제련 기술만 확보되면 무기와 농기구가 대중화됐죠. 재료의 민주화가 권력의 판도를 바꾼 것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주석 산지가 드물어 원료를 잇는 장거리 교역망 자체가 권력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재료의 공급 사슬이 문명의 뼈대라는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합금의 원리: 불순물이 만드는 강함
순수한 금속은 같은 크기의 원자가 규칙적으로 쌓인 구조라서, 원자층이 서로 쉽게 미끄러집니다. 그래서 순금이나 순구리는 무르죠. 합금(alloy)은 크기가 다른 원자를 끼워 넣어 이 미끄러짐을 방해하는 기술입니다. 청동은 구리에 주석을 대략 10% 섞은 합금이고, 강철은 철에 탄소를 2% 이하로 녹여 넣은 합금입니다. 탄소가 너무 적으면 무르고, 너무 많으면 부러지기 쉬운 주철이 됩니다. 강철의 역사는 이 좁은 범위를 통제하는 기술의 역사였고, 1856년 베서머(H. Bessemer) 공정이 그 통제를 산업 규모로 가능하게 했습니다. 스테인리스강은 여기에 크로뮴을 10.5% 이상 더한 것입니다. 크로뮴이 표면에서 산소와 만나 눈에 보이지 않는 치밀한 산화막을 만들고, 이 막이 내부를 부식으로부터 봉인하죠. 녹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주 얇게 녹슬어서 더 이상 녹슬지 않는 것입니다.
알루미늄: 금보다 비쌌던 금속
알루미늄은 지각에서 가장 풍부한 금속 원소입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는 금보다 비쌌습니다. 나폴레옹 3세가 가장 귀한 손님에게만 알루미늄 식기를 내놓았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죠. 이유는 화학에 있습니다. 알루미늄은 산소와의 결합이 워낙 강해서, 숯으로 철광석을 환원하듯 광석에서 뽑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해법은 전기였습니다. 1886년 미국의 홀(C. M. Hall)과 프랑스의 에루(P. Héroult)가 각자 독립적으로, 녹인 빙정석에 산화알루미늄을 녹여 전기분해하는 공정을 발명했습니다. 전자를 강제로 밀어 넣어 산소와의 결합을 끊어낸 것이죠. 이후 알루미늄 가격은 폭락했고, 귀금속은 음료수 캔이 됐습니다. 재료의 가치는 희소성이 아니라 분리하는 기술의 비용이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현대의 극한: 반도체의 순도
현대 문명을 규정하는 재료를 하나 꼽는다면 실리콘입니다. 반도체는 실리콘 결정에 불순물을 의도적으로 극미량 넣어 전기적 성질을 조각하는 기술인데, 그러려면 출발 재료가 상상을 넘는 수준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반도체용 실리콘의 순도는 99.999999999%, 이른바 일레븐 나인급입니다. 원자 수백억 개 중 이물질 원자가 몇 개 수준이라는 뜻이죠. 이 극한의 순도는 불순물이 녹은 영역에 모이는 성질을 이용해 막대 결정을 따라 용융 구간을 천천히 이동시키는 구역 정제(zone refining) 같은 정제 기술, 그리고 거대한 단결정을 통째로 길러내는 결정 성장 기술이 결합해 달성됩니다. 청동기 장인이 불순물을 섞어 강함을 얻었다면, 현대 재료공학은 불순물을 지우는 능력과 다시 정밀하게 넣는 능력을 동시에 겨룹니다. 시대의 이름이 될 재료는 이렇게 계속 바뀌고 있으며, 이 재료를 움직이는 에너지 문제는 다음 강에서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우리 시대가 후대에 재료의 이름으로 불린다면 무엇일까요. 실리콘기, 플라스틱기, 리튬기 중 어느 쪽이 이 시대를 가장 정직하게 요약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