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과 분자 4강. 물: 가장 이상한 액체
물이 평범한 액체였다면 호수는 바닥부터 얼고, 지구의 생명은 시작되지 못했을 겁니다.
풀고 시작
물의 변칙 목록
물은 흔해서 평범해 보이지만, 화학자의 눈에는 변칙 덩어리입니다. 얼마나 이상한지 목록으로 볼까요? 첫째, 얼음이 물에 뜹니다. 고체가 제 액체보다 가벼운 물질은 드물죠. 둘째, 물은 4℃에서 밀도가 최대이고 그보다 차가워지면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셋째, 비열이 유별나게 큽니다(4.18 J/g·℃). 같은 햇볕을 받아도 바다는 모래사장보다 훨씬 천천히 데워지죠. 넷째, 표면장력이 강합니다. 흔한 액체 중 수은 다음으로 커서, 소금쟁이가 수면을 걷고 컵의 물은 가장자리 위로 볼록하게 담깁니다. 크기가 비슷한 다른 분자들(H₂S, NH₃, CH₄)은 상온에서 모두 기체인데 물만 액체라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변칙입니다.
범인은 하나다: 수소결합 네트워크
이 변칙들은 3강의 도구 하나로 모두 풀립니다. 물 분자는 굽은 극성 분자이고(2강), 분자마다 수소결합을 최대 4개까지 맺어 거대한 그물을 짭니다. 얼 때는 이 그물이 육각형의 성긴 격자로 완성되어 부피가 늘고, 그래서 얼음이 뜨죠. 덕분에 호수는 표면부터 얼고 얼음층이 단열재가 되어 물고기는 바닥의 4℃ 물에서 겨울을 납니다. 큰 비열도 같은 원리입니다. 가한 열의 상당 부분이 분자를 빨리 움직이게 하는 대신 수소결합을 흔들어 끊는 데 쓰이므로 온도가 잘 오르지 않는 거죠. 표면장력은 그물의 응집력이 표면을 잡아당긴 결과입니다. 덧붙이면 물이 원소가 아니라 화합물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1781년경 캐번디시(H. Cavendish)가 가연성 공기(수소)를 태워 물을 얻었고, 라부아지에는 그 기체에 "물을 낳는 것"이라는 뜻의 이름 hydrogène을 붙였죠. 2000년 넘게 4원소의 하나였던 물의 강등이자, 근대 화학의 개막 장면입니다.
극성 용매: 기름과 물이 섞이지 않는 이유
물의 두 번째 재능은 녹이는 능력입니다. 소금을 물에 넣으면 물 분자들이 음극(산소)을 Na⁺에, 양극(수소)을 Cl⁻에 들이대며 이온을 하나씩 에워싸 격자에서 떼어냅니다. 설탕처럼 극성 부분을 가진 분자도 수소결합으로 붙잡아 녹이죠. 원리는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녹인다(like dissolves like)입니다. 극성 용매는 극성 물질을, 무극성 용매는 무극성 물질을 녹입니다. 기름이 물과 섞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죠. 무극성인 기름 분자는 물의 수소결합 그물에 끼어들 자격이 없어서, 물 분자들이 자기들끼리 손잡는 동안 밖으로 밀려나 뭉칩니다. 기름이 물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물이 물을 너무 좋아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생명의 용매
세포는 질량의 약 70%가 물이며, 생명의 화학은 전부 물속에서 일어납니다. 물은 영양분과 이온을 녹여 나르는 운반자이고, 큰 비열은 체온과 기후의 완충 장치가 되죠. 더 깊은 역할도 있습니다. 물에서 밀려나는 무극성 분자들의 뭉침(소수성 효과)은 세포막이 저절로 조립되고 단백질이 제 모양으로 접히게 만드는 조용한 설계자입니다. 물이 밀어내는 힘이 생명의 구조를 세운 셈이죠. 이 이야기는 생물학 서가의 세포와 단백질 강에서 이어집니다. 화학 서가의 다음 과목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분자들이 서로 부딪혀 변신하는 사건, 화학 반응을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다른 행성에서 물 대신 암모니아나 메테인이 용매인 생명을 찾는다면, 이 강의 논리 중 어디까지가 그대로 적용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