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의 원리 2강. 반응속도와 촉매
폭발과 녹슮은 같은 종류의 사건입니다. 다른 것은 오직 속도뿐이며, 그 속도를 지배하는 자가 산업을 지배합니다.
풀고 시작
반응이 일어나는 세 가지 조건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종이는 산소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절로 타지 않을까요? 반응식이 성립한다고 반응이 곧장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충돌 이론(collision theory)에 따르면 반응이 성사되려면 세 조건이 겹쳐야 합니다. 첫째, 분자들이 충돌해야 합니다. 둘째, 그 충돌이 기존 결합을 흔들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가져야 합니다. 셋째, 반응할 부위끼리 맞닿는 올바른 방향이어야 하죠. 기체 분자는 1초에 수십억 번 충돌하지만 대부분은 에너지가 모자라거나 방향이 어긋난 헛충돌입니다. 이 조건들이 곧 화학이 손댈 수 있는 손잡이의 목록이 됩니다.
활성화 에너지: 반응 앞의 언덕
반응물과 생성물 사이에는 에너지 언덕이 있습니다. 결합을 끊고 새로 잇는 도중의 불안정한 고개, 그 고갯마루까지 오르는 데 필요한 최소 에너지가 활성화 에너지(activation energy)입니다. 스웨덴의 아레니우스(Svante Arrhenius)는 1889년에 온도와 반응 속도의 관계를 식으로 정리하며 이 개념을 세웠습니다. 핵심은 지수 관계입니다. 언덕을 넘을 수 있는 분자의 비율이 온도에 따라 지수적으로 변하므로, 상온 부근에서는 온도를 10℃ 올리면 많은 반응의 속도가 대략 2배 안팎으로 뜁니다. 성냥불이 하는 일은 이 언덕을 처음 넘게 해 주는 것이고, 일단 연소가 시작되면 반응열이 다음 분자들을 언덕 위로 밀어 올리죠.
속도의 손잡이: 온도, 농도, 표면적
충돌 이론은 속도를 조절하는 손잡이를 알려 줍니다. 온도를 올리면 충돌이 잦아질 뿐 아니라 언덕을 넘는 충돌의 비율이 급증합니다. 농도(기체라면 압력)를 높이면 단위 시간당 충돌 횟수 자체가 늘어나죠. 고체라면 표면적이 관건입니다. 반응은 표면에서만 일어나므로 잘게 쪼갤수록 빨라집니다. 통나무는 천천히 타지만 같은 질량의 톱밥은 순식간에 탑니다. 밀가루 분진이 공장에서 폭발 사고를 일으키는 이유도 표면적이 극대화된 가연물이 공기와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촉매: 언덕을 낮추는 기술
촉매(catalyst)는 자신은 소모되지 않으면서 반응에 참여해 활성화 에너지가 더 낮은 새 경로를 열어 주는 물질입니다. 언덕 옆에 터널을 뚫는 셈이죠. 촉매는 반응의 시작과 끝, 곧 열역학적 수지는 건드리지 못하고 오직 속도만 바꿉니다. 자동차 배기구의 촉매 변환기는 백금 표면에서 유해 가스를 빠르게 무해한 기체로 바꾸고, 우리 몸의 효소는 체온에서 소화와 대사를 굴러가게 하는 단백질 촉매입니다.
촉매의 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하버-보슈 공정(Haber-Bosch process)입니다. 질소 기체 N₂는 삼중결합 탓에 지독히 반응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하버(Fritz Haber)는 1909년 철 계열 촉매와 고온, 고압으로 공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 NH₃로 바꾸는 데 성공했고, 보슈(Carl Bosch)가 이를 산업 규모로 키워 1913년 첫 공장이 가동됐습니다. 암모니아는 질소 비료의 원료가 되어 오늘날 인류의 절반가량이 이 공정이 만든 식량에 기대어 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같은 암모니아는 질산을 거쳐 화약과 폭탄의 재료가 되었고, 1차 대전의 독일은 이 공정 덕에 전쟁을 이어 갔죠. 하버 자신도 독가스 개발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반응 속도를 다스리는 기술은 축복과 재앙을 함께 실어 왔습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공정의 또 다른 축, 평형을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하버는 인류를 먹인 공로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지만 독가스전의 책임자이기도 했습니다. 과학자의 업적과 책임은 분리해서 평가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