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화학 1강. 탄소의 특권
주기율표 118개 원소 가운데 수천만 종의 화합물을 만드는 뼈대는 사실상 탄소 하나입니다. 생명의 화학은 곧 탄소의 화학입니다.
풀고 시작
왜 하필 탄소인가
지각의 겨우 0.02%를 차지하는 원소가 어떻게 화학의 주인공이 되었을까요? 탄소의 특권은 세 가지 성질의 조합에서 나옵니다. 첫째, 원자가전자가 4개라서 공유 결합을 최대 4개 만듭니다. 둘째, 탄소-탄소 결합이 탄소-산소, 탄소-수소 결합과 비슷하게 강해서, 탄소끼리 이어진 골격이 공기 중에서도 안정하게 유지됩니다. 셋째, 단일·이중·삼중 결합을 모두 만들 수 있죠. 그 결과 탄소는 사슬, 가지 달린 사슬, 고리, 고리와 사슬의 조합까지 사실상 무한한 골격을 짓습니다.
같은 14족의 규소(silicon)와 비교하면 이 특권이 선명해집니다. 규소도 결합 4개를 만들지만 규소-규소 결합은 탄소-탄소 결합보다 약하고, 규소는 산소와 만나면 단단한 그물 구조(석영, 모래)로 굳어 버립니다. 규소의 화학이 암석을 만드는 동안, 탄소의 화학은 분자를 만들죠. 현재까지 등록된 화합물 수천만 종의 대부분이 유기 화합물인 이유입니다.
생기론, 그리고 1828년의 요소
19세기 초까지 화학자들은 생기론(vitalism)에 기울어 있었습니다. 생명체가 만드는 물질(유기물)에는 생명력이라는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어, 실험실의 무기물에서는 합성할 수 없다는 생각이죠. 유기화학과 무기화학 사이에 존재론적 장벽이 있었던 셈입니다.
1828년 독일의 뵐러(Friedrich Wöhler)가 이 장벽에 금을 냈습니다. 무기물인 사이안산 암모늄을 가열했더니 소변의 성분인 요소(urea)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는 스승 베르셀리우스에게 "콩팥 없이도, 사람이나 개 없이도 요소를 만들 수 있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다만 지적 정직성을 위해 덧붙이면, 생기론이 이 한 번의 실험으로 즉사한 것은 아닙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유기 합성의 축적이 장벽을 완전히 허물었다는 것이 과학사학계의 통설이죠. 그래도 상징적 출발점이 1828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성질체: 같은 재료, 다른 물질
뵐러의 실험은 또 하나의 발견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이안산 암모늄과 요소는 분자식이 같습니다. 같은 원자들을 같은 개수로 가졌는데 전혀 다른 물질인 것이죠. 베르셀리우스는 이런 관계에 이성질체(isome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에탄올(마시는 술의 성분)과 다이메틸 에터는 둘 다 C₂H₆O이지만, 하나는 상온에서 액체인 술이고 하나는 기체입니다. 분자식이 아니라 원자들의 연결 방식, 곧 구조가 물질의 정체를 결정한다는 뜻이죠. 유기화학이 구조의 과학이 된 출발점이며, 탄소 골격이 길어질수록 가능한 이성질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탄소 4개짜리 부탄은 이성질체가 2종이지만, 탄소 10개짜리 데케인은 골격을 짜는 방법만 75가지입니다. 탄소의 결합 다양성이 화합물 수천만 종이라는 숫자로 이어지는 통로가 바로 이 조합의 폭발입니다.
케쿨레와 벤젠 고리
구조의 과학을 완성한 인물이 케쿨레(August Kekulé)입니다. 그는 1858년 무렵 탄소가 4가이며 탄소끼리 사슬로 이어진다는 구조 이론을 세웠고, 1865년에는 최대 난제였던 벤젠(C₆H₆)의 구조로 육각형 고리를 제안했습니다. 수소가 6개뿐인데 안정한 이 분자는 사슬 구조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았거든요. 케쿨레는 말년의 연설에서 뱀이 제 꼬리를 무는 꿈에서 고리 착상을 얻었다고 회고했는데, 이 일화의 사실성은 논쟁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고리라는 발상이 방향족 화학 전체를 열었다는 점이죠. 훗날 밝혀진 바로 벤젠의 여섯 결합은 단일·이중이 교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가 고리 전체에 퍼져 모두 같은 길이를 갖습니다. 이 벤젠 고리는 다음 강에서 다룰 작용기들, 그리고 4강의 DNA 염기에도 골격으로 등장합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외계 생명을 탐색할 때 과학자들이 탄소 화합물을 우선 지표로 삼는 것은 정당한 편견일까요, 아니면 우리 화학의 한계를 반영한 편협함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