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화학 2강. 작용기: 분자의 성격
술과 식초와 과일 향을 가르는 것은 분자의 크기가 아니라 골격 끝에 붙은 원자 몇 개입니다.
풀고 시작
골격이 아니라 작용기가 성격이다
수백만 종의 유기 화합물을 하나하나 외우는 화학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기화학이 가능한 걸까요? 답은 작용기 개념에 있습니다. 탄소와 수소로만 이루어진 골격은 반응성이 낮습니다. 분자의 화학적 성격은 골격에 붙은 작은 원자 집단, 곧 작용기가 결정하죠. 같은 작용기를 가진 분자는 골격의 길이와 모양이 달라도 비슷한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수백만 종의 물질이 십여 개의 "성격 유형"으로 정리됩니다. 1강에서 구조가 물질의 정체를 결정한다고 했는데, 그 구조 중에서도 반응을 지배하는 급소가 작용기입니다.
술, 식초, 과일 향, 생선 비린내
알코올은 골격에 하이드록시기(-OH)가 붙은 분자입니다. 대표가 술의 성분 에탄올이죠. -OH 덕분에 물과 잘 섞이고, 산화되기 쉽습니다. 열어 둔 와인이 시큼해지는 것은 에탄올이 공기 중 산소와 미생물의 작용으로 아세트산으로 산화되기 때문입니다.
카복실산은 카복실기(-COOH)를 가진 분자로, 물에서 수소 이온을 내놓는 약산입니다. 식초의 신맛이 바로 아세트산의 맛이죠. 앞 과목에서 다룬 산의 화학이 유기 분자 위에서 재연되는 셈입니다.
에스터는 카복실산과 알코올이 물 한 분자를 잃으며 결합해 만들어집니다. 신 냄새의 산과 냄새가 강한 알코올이 만나 뜻밖에도 달콤한 향이 태어나죠. 반응 전후로 성격이 완전히 바뀌는 것, 이것이 작용기 화학의 재미입니다. 아세트산과 에탄올이 만든 에틸 아세테이트는 매니큐어 리무버와 과일 향의 성분이고, 바나나 향의 핵심은 아이소아밀 아세테이트입니다. 과일 향료 산업은 상당 부분 에스터의 화학입니다.
아민은 질소를 포함한 작용기(-NH₂ 등)를 가진 염기성 분자입니다. 생선 비린내의 주범이 트라이메틸아민이라는 아민이죠. 생선에 레몬을 뿌리는 요리법은 화학적으로 정확합니다. 레몬의 산이 염기인 아민을 중화해 잘 날아가지 않는 염으로 바꾸므로 비린내가 줄어듭니다.
작용기 문법은 의약품에서도 그대로 읽힙니다. 아스피린 분자에는 카복실기와 에스터 결합이 함께 들어 있고, 약이 몸에서 어떻게 녹고 어디에 결합할지는 상당 부분 이런 작용기들의 배치가 결정합니다. 신약 설계란 결국 골격 위에 어떤 작용기를 어디에 붙일지 고르는 일입니다.
| 작용기 | 대표 물질 | 일상의 얼굴 |
|---|---|---|
| 하이드록시기 -OH | 에탄올 | 술 |
| 카복실기 -COOH | 아세트산 | 식초의 신맛 |
| 에스터 결합 | 아이소아밀 아세테이트 | 바나나 향 |
| 아미노기 -NH₂ 계열 | 트라이메틸아민 | 생선 비린내 |
에탄올과 메탄올: 탄소 하나의 차이
작용기가 같아도 골격이 다르면 운명이 갈리는 극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에탄올(탄소 2개)과 메탄올(탄소 1개)은 둘 다 알코올이고 냄새와 맛으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메탄올은 소량으로도 실명과 사망을 일으키죠. 흥미롭게도 메탄올 자체보다 몸이 그것을 처리한 결과가 독입니다. 간의 알코올 분해 효소가 메탄올을 폼알데하이드로, 이어서 폼산으로 산화시키는데, 폼산이 시신경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메탄올 중독의 응급 처치 중 하나가 역설적으로 에탄올 투여입니다. 같은 효소를 두고 에탄올이 경쟁하게 만들어 메탄올의 산화를 늦추는 것이죠. 밀주 사고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비극이며, 작용기와 대사의 화학을 아는 것이 생사를 가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작용기는 이어붙이는 손잡이다
작용기는 성격일 뿐 아니라 손잡이이기도 합니다. 카복실산과 알코올이 에스터로 결합하듯, 작용기를 양쪽 끝에 가진 분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길게 이어질 수 있죠. 이 반복 연결이 다음 강의 주제인 중합이며, 나일론과 폴리에스터가 정확히 이 원리로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