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 4강. 인류세 논쟁
인류세는 2024년에 공식 지질시대가 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가 이 개념에 대한 가장 정직한 설명입니다.
풀고 시작
회의장에서 튀어나온 단어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된 단어가 사실은 회의 중의 외침에서 태어났습니다.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환경 관련 국제회의에서, 오존층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크뤼천(Paul Crutzen)이 "홀로세"라는 말이 반복되자 참지 못하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홀로세에 있지 않다, 지금은 인류세(Anthropocene)다. 인간 활동이 지질학적 힘의 규모에 도달했으므로 새 시대 이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죠. 생태학자 스토머(Eugene Stoermer)가 이미 쓰던 용어를 크뤼천이 함께 정식화하면서, 이 단어는 과학계와 인문학, 언론을 가로지르는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미래의 지질학자는 무엇을 파낼까
1억 년 뒤의 지질학자가 우리 시대의 지층을 판다면 무엇이 나올까요? 인류세가 지질시대가 되려면 수사학이 아니라 지층에 남는 물리적 흔적이 필요합니다. 후보는 실제로 많습니다. 1950년대 이후 핵실험이 전 지구에 뿌린 방사성 낙진(플루토늄 동위원소)은 얇고 뚜렷한 전 지구 동시 표지층을 만들었습니다. 플라스틱은 퇴적물에 축적되며 암석과 융합된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까지 보고되었죠. 그리고 뜻밖의 후보로 닭 뼈가 있습니다. 인간이 매년 수백억 마리를 소비하는 육계는 개체수로 역사상 가장 흔한 척추동물 중 하나이며, 야생 조상과 골격부터 다른 이 새의 뼈가 전 세계 매립지에 쌓이고 있습니다. 미래 지질학자에게는 콘크리트, 알루미늄과 함께 훌륭한 표준화석(2강) 후보입니다. 층서학자들의 실무 그룹은 2023년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의 연층 퇴적물을 대표 지점 후보로 선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시작점을 어디에 긋는가
문제는 시작점이었습니다. 후보마다 논리가 다르거든요. 농경과 함께 인간의 영향이 시작되었다는 초기 인류세론, 구대륙과 신대륙의 접촉이 낳은 생태 교환과 1610년 무렵의 이산화탄소 하강을 짚는 견해, 산업혁명 기점론, 그리고 20세기 중반의 거대 가속(Great Acceleration) 기점론이 경쟁했습니다. 실무 그룹은 전 지구 동시 표지가 가장 선명한 1950년대(방사성 낙진)를 택했죠. 그러나 이 선택은 역설을 낳습니다. 시작점이 늦을수록 표지는 선명해지지만,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영향 대부분이 "인류세 이전"으로 밀려나는 것입니다.
2024년, 부결
2024년 3월, 국제 층서 기구의 심의 절차에서 인류세를 공식 세(epoch)로 승격하는 제안이 표결 끝에 부결되었고, 국제지질과학연맹(IUGS)이 이를 최종 확정했습니다. 공식 지질시대표에서 인류세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홀로세에 삽니다. 그런데 부결의 논거를 들여다보면 흥미롭습니다. 인간 영향의 부정이 아니었거든요. 첫째, 70여 년은 지질시대 단위로서 너무 짧습니다. 홀로세 전체가 이미 1만 2천 년짜리 짧은 세죠. 둘째, 인간의 영향은 특정 연도에 시작된 경계가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누적된 과정이므로, 한 시점의 "황금못"으로 자르는 방식과 맞지 않습니다. 셋째, 진행 중인 사건을 시대로 봉인하는 것보다 지질학적 사건(event)으로 다루는 편이 낫다는 대안이 있었습니다. 대멸종(3강)도 시대가 아니라 사건으로 기술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이름 없이도 유효한 개념
그렇다면 인류세는 죽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결된 것은 층서학의 공식 단위 지위일 뿐, 인간이 기후, 퇴적, 생물상, 지구화학 순환을 지질학적 규모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 판단이 아닙니다. IUGS도 인류세가 지구과학과 사회의 담론에서 계속 쓰일 유용한 개념임을 부정하지 않았죠. 오히려 이 사건은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보여 줍니다. 아무리 인기 있는 개념도 분과의 엄격한 규약을 통과하지 못하면 공식 지위를 얻지 못하며, 공식 지위가 없다고 개념의 분석적 유용성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공식 인류세는 없다"와 "인류는 지질학적 힘이다"는 모순 없이 양립합니다. 이 구분을 정확히 유지하는 것이 이 논쟁에서 배울 지적 정직성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지질시대 구분은 과거를 기술하는 과학이지만, 인류세 명명은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의 책임을 묻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과학의 분류 체계에 그런 규범적 역할을 맡기는 것은 정당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