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 1강. 심원한 시간
지구의 나이는 6천 년에서 45억 년으로 75만 배 늘어났습니다. 이 확장이 근대 지질학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풀고 시작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 저녁
천지창조의 날짜와 시각까지 계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17세기 아일랜드의 어셔(James Ussher) 대주교는 성서의 족보와 고대 근동의 연대기를 교차 검증해 천지창조의 시점을 계산했고, 결론은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 저녁이었습니다. 오늘날 웃음거리처럼 인용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방대한 문헌을 동원한 진지한 학문적 작업이었죠.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전제였습니다. 문서 기록만으로 지구의 나이를 잴 수 있다는 전제 말입니다. 지구 자체가 기록이라는 생각은 아직 없었습니다.
허턴, 시카포인트에서 시간의 심연을 보다
1788년 스코틀랜드의 허턴(James Hutton)은 시카포인트(Siccar Point) 해안에서 결정적 증거를 확인합니다. 거의 수직으로 선 오래된 지층 위에, 수평에 가까운 젊은 지층이 얹혀 있는 부정합(unconformity)이었죠. 이 구조가 만들어지려면 아래 지층의 퇴적, 융기와 기울어짐, 오랜 침식,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퇴적이라는 전체 순환이 한 번 이상 완결되어야 합니다. 각 단계가 인간의 시간 감각을 아득히 넘어서죠. 허턴은 이 통찰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습니다. "시작의 흔적도, 끝의 전망도 없다." 지구는 느린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어 온 기계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 다윈에게 시간을 주다
허턴의 통찰을 체계로 만든 사람이 라이엘(Charles Lyell)입니다. 그는 『지질학 원리』(1830~1833)에서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을 정식화했습니다. 현재 관찰되는 침식, 퇴적, 화산 활동 같은 과정이 과거에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했으며, 지질 기록은 그 느린 과정의 누적으로 설명된다는 원리입니다. 반대편에는 대홍수 같은 격변으로 지층을 설명하는 격변설이 있었죠. 흥미로운 후일담이 있습니다. 라이엘의 책은 비글호에 오른 다윈의 애독서였고, 진화가 요구하는 막대한 시간을 지질학이 먼저 마련해 준 셈입니다. 다만 현대 지질학은 소행성 충돌 같은 격변적 사건도 인정하므로, 동일과정설은 "자연법칙의 균일성"이라는 온건한 형태로 살아남았습니다.
방사성 시계가 논쟁을 끝내다
19세기 말,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가 지질학자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켈빈은 지구의 냉각 속도를 계산해 나이를 수천만 년으로 제시했고, 지질학자들이 요구하는 긴 시간과 정면으로 충돌했죠. 반전은 1896년 방사능의 발견이었습니다. 지구 내부의 방사성 붕괴열이 켈빈의 계산을 무너뜨렸고, 동시에 붕괴 자체가 정밀한 시계를 제공했습니다. 반감기가 일정하므로 광물 속 우라늄과 납의 비율이 결정된 이후의 시간을 알려 주는 것이죠. 1956년 패터슨(Clair Patterson)이 운석의 납 동위원소를 분석해 지구의 나이를 약 45.5억 년으로 확정했고, 현재 값은 45.4억 년입니다. 어셔의 6천 년이 75만 배로 늘어난 순간입니다.
지질시대의 큰 그림
방사성 연대는 지질시대 구분에 절대 눈금을 부여했습니다. 가장 큰 단위인 누대부터 보겠습니다.
| 누대 | 기간 | 특징 |
|---|---|---|
| 명왕누대 | 45.4억~40억 년 전 | 마그마 바다, 암석 기록 거의 없음 |
| 시생누대 | 40억~25억 년 전 | 최초의 대륙지각과 생명의 흔적 |
| 원생누대 | 25억~5.41억 년 전 | 산소 대폭발, 진핵생물 등장 |
| 현생누대 | 5.41억 년 전~현재 | 화석이 풍부한 시대 |
현생누대는 다시 고생대(5.41억~2.52억 년 전), 중생대(2.52억~6600만 년 전), 신생대(6600만 년 전~현재)로 나뉩니다. 그런데 경계선들이 왜 하필 저 지점에 그어졌을까요? 대부분 생물상이 급변한 사건, 즉 대멸종의 자리입니다. 이 경계의 주인공인 화석과 멸종은 2강과 3강에서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45.4억 년이라는 시간을 인간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숫자를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요.